▲ 문재철 씨가 자신의 갤러리에서 진열대에 올려놓은 아날로그 카메라 하나하나의 내력을 설명해주고 있다. 문 씨는 손에 넣은 카메라는 모두 분해해 다시 맞추고 고장나거나 빠진 부품을 손수 깎아내는 등 수리해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손을 본다. 카메라는 제대로 작동할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경기 일산 주택가의 지하. 거기에 문재철(59) 한국창호자동화 대표의 갤러리가 있다. 이름하여 ‘문재철의 공간갤러리’다. 갤러리라고 했지만, 정작 문 씨는 화가는 아니다. 갤러리에는 그림 대신 오래된 카메라가 전시돼 있다. 그가 30여 년이 넘도록 모아온 것들이다. 지금까지 그가 수집한 카메라만 1500여 대. 100년이 넘은 골동품들부터 비교적 근래에 구입한 ‘스페셜 에디션’의 카메라까지 다양하다. 그는 카메라를 모으는 수집가이면서 이렇게 사들인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는 작가이기도 하다.
골동품 카메라 500여 대가 진열된 갤러리로 들어서서 악수를 하는데 손을 잡자마자 문 씨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곧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지난 11월 중순쯤 에티오피아의 에르타알레 화산에서 사진을 찍다가 손에 화상을 입었는데, 하루 전에야 붕대를 풀어 아직 통증이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손등만이 아니었다. 얼굴에도 붉은 화상 자국이 있었다. “어쩌다가?”란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무용담이 펼쳐졌다. 화산에 접근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반군들에게 허락을 받는 과정부터 군인의 호위를 받아 화산의 분화구 앞에 다가서기까지의 우여곡절, 그리고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장면을 ‘딱 한 컷’만 더 찍으려다 튀어오른 마그마에 손등을 덴 얘기까지…. 위급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과 몸짓, 말투에서 사진이 그가 ‘정말 좋아하는 일’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사진을 ‘찍는’ 일보다 카메라를 모으는 일에 열 배쯤 더 열광한다. 그에게 “저울의 한 쪽에 ‘사진찍기’를, 다른 쪽에 ‘카메라 수집하기’를 올려놓는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겠느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수집하기”란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사진은 언제고 기다렸다가 다시 찍을 수 있지만, 귀한 카메라는 한 번 놓치면 다음 기회가 없어요. 어렵게 구한 카메라를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지요.”
그의 카메라와의 인연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집에 일제 야시카 중형카메라가 있었다. 거꾸로 상이 맺히는 카메라였는데 어찌나 신기했던지 카메라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작동법도 잘 모르는 데다 워낙 귀한 물건이라 손을 댈 수 없었다. 대신 최초의 국산카메라인 코니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수집한 건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25세 때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 3만2000원 중에서 2만5000원을 뚝 떼어내 일제 카메라 야시카 일렉트로35를 샀다. 애지중지 카메라를 다루면서 그의 수집생활이 시작됐다. 직장을 나와 27세에 창호사업을 시작하면서 카메라 수집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른바 명기(名器)로 꼽히는 오래된 카메라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엔지니어 출신이라 기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카메라라는 게 좀 묘하더군요. 장인들이 손수 깎아 만든 렌즈와 작고 정밀한 부품을 보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카메라는 시간을 붙잡아두는 기계 아닙니까. 제 손으로 흘러들어온 카메라가 이전의 주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남겨줬을까 생각해보면 뭉클해지기까지 합니다.”
지금껏 문 씨가 출장과 여행으로 다녀온 나라는 50여 개국이 훨씬 넘는다. 나라가 아니라 도시로 친다면 그 숫자가 두세 배쯤으로 늘어난다.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묻자 ‘라오스’란 답이 나왔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거기서 스무 대가 넘는 카메라를 구했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는 목적도 오로지 ‘카메라 구입’이란 얘기다. 그가 꼽는 가장 좋은 카메라 수집처는 유럽의 식민지 지배 경험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 그래서 그는 인도, 베트남, 라오스 등의 나라를 주로 찾는다. 이런 나라의 작은 소도시와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카메라를 수소문했다.
“10년 전쯤 베트남에서 미국인 종군기자가 미군철수로 급하게 귀국하면서 숙박비 대신 남겨두고 갔다는 카메라를 샀어요. 카메라에 수십 년 동안 들어 있던 필름을 인화해보니 월남전 당시의 사진이 남아 있더군요. 구한말 한국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미국인 후손들로부터 구입한 대형카메라에 남아 있던 필름에는 당시 보부상의 사진이 담겨 있었어요. 이렇게 카메라 하나하나에는 역사와 추억이 잠겨 있어요. 카메라를 수집한다는 건 이런 이야기들을 모은다는 것이지요.”
그는 카메라를 수집하지만, 단순히 카메라를 모아두는 것은 아니다. 고장이 나서, 혹은 부품이 없어서 버려진 카메라를 틈나는 대로 손수 하나하나 분해하고 수리해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는다. 실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카메라가 비로소 생명을 가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제없이 작동이 되는 것이라도 다 분해했다가 청소를 하고 다시 조립한다. 카메라 한 대를 손보는 데 보통 보름 이상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 갤러리 전시대에 올려진 500여 대의 카메라다. 여기다가 따로 보관해놓고 앞으로 손을 봐야 할 것이 1000여 대가 넘는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카메라를 사지 않는다. 더 모을 생각도 없고, 더 모을 수도 없다고 했다. 웬만한 카메라는 다 손에 넣은 탓도 있지만 최근 중국 수집가들이 천정부지로 카메라 가격을 올려놓는 통에 카메라 수집이 ‘돈 놓고 돈 먹기’식의 투기가 돼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장인의 손길 대신 온통 회로기판으로 가득한 디지털카메라가 더 이상 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탓도 있다.
“저 스스로 엔지니어로 기술의 진보를 믿고 있지만, 기술의 마지막의 정점에는 인문적인 아날로그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령 라이카 카메라에는 많게는 20장의 렌즈가 겹쳐지는데 한 사람이 정교하게 깎아놓은 렌즈도 특성이 제각기 다릅니다. 카메라를 만들면서 이런 특성을 보완하는 렌즈를 골라서 겹쳐 넣습니다. 같은 모델이라도 똑같은 카메라는 한 대도 없는 셈이지요. 이렇게 만들어낸 것이 바로 회로판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의 온기가 있는 명품입니다.”
회로판과 디지털이 사람의 훈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어디 카메라만의 얘기일까. 그는 독자들에게 혹 장롱 속에 깊이 넣어둔 오래된 아날로그 카메라가 있다면 꺼내보라고 권했다. 오래전 가족들의 화목한 한때를, 오랜만의 가족여행을, 자녀들의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퇴역한 낡은 사진기를 꺼내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보라고 했다. 카메라는 차가운 기계지만, 오래 쓴 카메라에는 이처럼 따스한 온기가 스며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 문화일보 20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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