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 오는 7일 개막하는 뮤지컬 ‘영웅’ 공연장인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선 박동우 교수는 “예술 자료를 축적해 두는 창작자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사진, 아래) 박 교수가 기증한 뮤지컬 ‘영웅’ 중 하얼빈 의거 장면의 무대 스케치.
[박동우 중앙대 교수, 30년 무대예술 창작물 예술자료원에 기증]
무대 스케치·도면·작화 4400점… 개인 창작물 기증으론 역대 최대
제대로 관리 안돼 썩은 것도 많아… 무대 모형 포함되지 않은건 아쉬워
"제가 제 돈을 들여서라도 해야 할 일을 국가가 해주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감사한 일이죠. 이런 것이 세금 낸 보람이구나 느꼈습니다."
30년 가까이 축적해온 자식 같은 창작물을 모두 기증한 예술가의 '소감'은 명료했다. 박동우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교수(52)는 최근 국립예술자료원(원장 김윤철)에 대한민국 무대예술의 역사가 담긴 그의 무대 스케치, 도면, 작화 등 4400여점을 기증했다. 무용평론가 고(故) 김영태씨와 국립발레단장을 지낸 고(故) 임성남씨가 공연 프로그램, 관련 서적 등 1만~2만점을 기증한 적은 있으나, 개인이 기증한 창작물로는 최대 규모다.
이번 기증은 자료원 측이 먼저 제안해 성사됐다.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박 교수는 "우리나라 예술계 데이터 네트워크가 방대해지고, 예술 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일이라고 생각해 자료원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7년 극단 산울림의 '숲 속의 방'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등 무대가 펼쳐보일 수 있는 모든 상상의 영역이 그의 작업공간이 돼왔다. 그의 무대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구현하는 통찰력이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극 '산불', '침향(沈香)', '고도를 기다리며', 오페라 '가면무도회',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 200여편이 그의 '자식'이다. 2006년 무대미술가로는 최초로 이해랑연극상을 받았다.
"제가 끌어안고만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제대로 보존되고 활용돼야죠. 자료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존하면 학생들이 검색해서 보고 배울 수도 있고요. 자료의 가치가 높아지는 일이니, 참으로 기쁜 일이죠."
기증 자료에는 데뷔 이후 모아온 거의 모든 창작물이 포함됐다. 2000년대 이후 것이 많다. "그전에는 자료 축적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연습장이나 제작소에서 굴러다니다 망가지고 없어지는 것이 부지기수였으니까요. 비 맞고 습기 차서 썩어버린 것도 많고요. 10년 전부터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부지런히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세트 모형이 포함될 수 없었던 점은 아쉽다고 했다. 자료원에서도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 기증 자료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의 스케치와 도면을 들었다. 각각 1995년, 2009년 초연한 두 작품은 역사적 의미와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박 교수는 "국가적으로 보관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예술가 개인도 자료를 모으고 축적하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극과 뮤지컬은 영화와 달리 영상 자료가 부족한 데다, 사진 촬영을 해도 무대 전체보다는 배우 클로즈업을 주로 남긴다. 박 교수는 "제 공연 사진은 제가 찍는다"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작품당 많게는 1000장 정도를 촬영해 30여장을 보존용으로 추린다. "아직은 자료 생산과 축적 과정의 중요한 고리가 빠져 있어요. 무대미술가 개인이 의지를 가지고 후일에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세트 전체를 기록 혹은 촬영해 남겨야 합니다."
박 교수는 "앞으로 창작 과정에서 생기는 자료들도 차례로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제가 필요하면 자료원 가서 빌려서 보면 되죠. 예술이란 게 공유하고, 남겨줄 수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료원은 이후에도 그의 기증품을 차례로 추가해 원하는 이들이 열람하도록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를 통해 서비스할 예정이다.
신정선 기자
- 조선일보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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