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일본 등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추적해 온 정규홍씨는 “민간이 주체가 돼 반출의 불법성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에 펼쳐든 게 이번에 펴낸 책이다. [사진 정규홍씨]
미술 교사가 일본으로 반출된 경북지역 문화재를 33년에 걸쳐 추적해 1000쪽이 넘는 책으로 집대성했다.
사단법인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와 경북도가 새해 벽두 펴낸 『경북지역의 문화재 수난과 국외반출사』가 그런 집념의 산물이다. 자그마치 1152쪽에 달한다. 이 책은 대구·경북지역 가야·신라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 경로를 일제강점기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소상히 담고 있다. 반환을 요구하면 꼼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증자료가 만들어진 것이다.
옛 신문 기사 등 파헤쳐 1152쪽 책으로
저자는 경북 의성 안계중·고를 나와 현재 서울 강현중 미술 교사로 있는 정규홍(56)씨. 그는 우리 문화재의 국외 반출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자다.
내용 중 오쿠라 다케노스케 부분은 이렇다. 일제강점기 경북지역 유물 수집가인 오쿠라가 반출한 우리 문화재는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다. 1100여 점이다. 이게 전부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앞서 41년 공개된 목록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들 중 가야 황금관 등은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7점)와 중요미술품(25점)이 됐다.
오쿠라 반출 1100여 점엔 일본 국보도
광복이 되면서 대구지역 일본인 유물 수장가들은 그동안 수집한 걸 대구부윤(대구시장)에게 헌납했다. 미군정이 반출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47년 달성공원에 시립박물관을 지어 이들 유물을 전시했다. 문제는 6·25 이후 혼란한 시기에 생겼다. 이곳에 있던 값진 유물 상당수가 공무원의 관리 부실로 인해 외부로 팔려나갔다. 2000점이 넘던 유물은 1312점으로 줄어들었다. 당시 신문에 여러 차례 보도된 사실이다. 시립박물관 유물은 57년 경북대로 이관됐다.
이 책은 또 불국사 다보탑 석사자의 유출 경위와 안동 광흥사의 『월인석보』 소실 원인 등 불교 문화재의 수난사도 담고 있다.
정씨는 2년 만에 이런 방대한 책을 냈을 만큼 내공이 상당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가 문화재찾기에 빠져든 것은 올해로 33년째. 대학 졸업 직후 들은 한 강연이 계기가 됐다. 경주 석굴암은 일제강점기 수리가 잘못돼 60년대 초 바로잡는 공사가 시작됐다. 고(故) 황수영 박사가 현장을 지휘했다. 황 박사는 공사장 화장실에 들렀다가 ‘석굴중수상동문(石窟重修上棟文)’ 현판을 우연히 발견했다. 석굴암을 언제 중수했는지 기록한 자료가 간이화장실 벽판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유출 문화재 문제에 눈을 떴습니다.”
서양화 전공 … ‘석굴암 자료 방치’ 충격
정씨는 그동안 헌책방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도서관에서는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과 북한판 『조선왕조실록』 등을 읽었다. 안목이 생기면서 지금은 일본학자들의 관련 기록도 뒤지고 있다.
그는 2005년부터 『우리 문화재 수난사』 『석조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 등 반출 문화재 관련 역작을 잇따라 선보였다.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소재가 확인돼도 환수 실적은 미미하다. 대일 청구권을 포기한 65년 한·일협정이 한몫을 한다는 것이다. 민간 차원의 문화재찾기운동이 절실한 이유다. 정씨는 그래서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의 불법성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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