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서가 오홍근 씨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소장품인 문예지 ‘창작과 비평’ 창간호(1966년)와 2호를 앞에 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오 씨는 35년 동안 3000여 권의 서적을 수집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짜릿한 느낌을 전합니다. 인터넷과 비교가 안 되죠. 책은 내 인생의 문신이자 생활 자체입니다.”
대학시절부터 35년 동안 용돈을 아껴 책을 모아와 3000여 권의 서적을 수집한 50대 중반의 중소기업 사장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그마한 금속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오홍근(55) 씨가 그 주인공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문화재단 등이 선정한 ‘2007 모범장서가’로 뽑힌 그는 그동안 수집한 책과 함께 1000여 권의 서적 관련 스크랩북도 애장하고 있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오 씨의 아파트는 작은 도서관이다. 딸과 아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내고, 부인과 오붓하게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집 거실 벽면에 설치된 서가에 빼곡히 책을 꽂아두고, 그것도 모자라 방 한 칸을 서재로 꾸몄다. 또 나머지 책들은 회사 공장에 보관하고 있다.
오 씨는 대학시절부터 책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술과 담배를 멀리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동맥에는 자음이 흐르고, 정맥에는 모음이 흐른다’고 할 정도로 그에게 있어 책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진한 자국이 됐다. 그는 “책을 읽고 있으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권 두 권 모아온 책들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한다. 책 덕분에 신경림 시인, 신경숙 작가와 만났다. 또 김용옥·박홍규 교수를 알게 된 것도 책을 통해서다.
오 씨의 집을 방문한 작가들은 그의 서가를 보고 ‘작가들의 무덤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한다. 그만큼 귀중한 책들이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작가들에게 자신의 집을 ‘작가들의 궁전’이라고 소개한다.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란 오 씨는 일찌감치 독서에 빠져들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책읽기를 일상화했다. 대학시절인 1980년대 초 이병주 씨가 쓴 대하소설 ‘지리산’을 접하면서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된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방에 서재를 꾸미고 장서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자신이 소장해온 이병주 씨의 저서 300여 권을 지난해 경남 하동군 이병주사업회에 기증했다. 이 책들은 대부분 초판본이다. 그는 “이병주 씨의 작품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 씨는 한 작가의 작품에만 몰두하는 전작주의자는 아니다. 그의 서가에는 사회과학·인문학 서적도 수두룩하다. “요즘에는 인문학 서적에 더 손길이 간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장서를 주제별, 인물별, 발간 연도별로 정리해뒀다. 그가 특히 아끼는 소장품은 계간 문예지 ‘창작과 비평’이다. 그는 1966년 발행된 창작과 비평 창간호부터 최근호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는 책을 살 때도 미리 서평을 꼼꼼하게 읽은 후 구입목록을 작성한다. 또 가급적이면 책의 초판본을 사고, 책 사이에 그 책의 서평이 게재된 신문 스크랩을 끼워둔다.
오 씨의 하루 일과 중 빠지지 않는 일은 신문을 스크랩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역사를 기록해야 할 것 같아서”가 그가 신문 스크랩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북섹션’이 있는 주말판 신문을 따로 구입하는 그의 바지주머니에는 스크랩용 칼이 항상 꽂혀 있다. 연재소설, 사설, 책 관련 기획기사 등이 스크랩 대상으로 단순히 스크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레 랩으로 싸고, 제본을 해 예쁜 책으로 만든다.
오 씨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빠져 책을 잘 읽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은 ‘손맛’을 모를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가 말하는 손맛은 바로 책장을 넘길 때의 설렘과 짜릿함이다. 그는 책을 살 때마다 책의 뒷면에 구입 소감을 적는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 살 당시 자신의 느낌과 독서소감 등을 꼼꼼하게 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장모님이 명절 세뱃돈 5만 원을 주셨다. 그 돈으로 이 책을 샀다. 용돈을 다 써버렸지만 책 사는 데 썼으니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진 않을 거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책읽는 티를 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잣대로 책 내용을 재단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책은 책이고 작가는 작가라는 것이다.
오 씨는 주말마다 배낭을 메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와 청계천 헌책방, 경기 파주시, 부산의 북카페로 ‘책 순례’를 떠난다. 그가 책을 사는 데 드는 돈은 월평균 30만 원 정도다. 지난 2007년 모범장서가로 뽑혀 부상으로 받은 100만 원도 바로 집 근처 서점에서 몽땅 책을 사는 데 썼다.
창작과 비평 창간호를 구입할 때의 에피소드만 들어도 그의 책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다. 대학시절 서울 신길동의 헌책방에서 창작과 비평 창간호를 찾아낸 그는 500원을 주고 그 책을 산 뒤 주인이 도로 물러달랄까봐 버스 두 정거장 거리를 단숨에 도망치다시피 했다고 한다.
오 씨는 ‘내 서재의 책들, Billy OH(A PIECE OF MY MIND)’(blog.naver.com/ohgn)라는 제목의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0월 16일 문을 연 이 블로그에는 그가 ‘인터넷 강타’라는 닉네임으로 쓴 수천 건의 서평이 올려져 있다. 그가 장서가로 알려지게 된 것도 이 블로그 덕분이며 블로그를 통해 작가들과 만나게 됐고, 러시아의 한 전기작가 집안으로부터 편지를 받기도 했다.
“책을 아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많이 부러워한다”고 말하며 환한 웃음을 보인 오 씨는 죽는 날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이 소망이라고 밝혔다.
안양 = 김형운 기자 hwkim@munhwa.com
- 문화일보 20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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