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과 스밈
지난달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을 표방하며 개관한 ‘지혜의 숲’에 대해 출판계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책 기증에만 의존하는데다 도서분류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전문 사서도 두지 않는 등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들 한다. 일반 도서관 개념에 비춰 본다면 그런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혜의 숲이 종이책의 ‘무덤’, ‘지옥’, ‘폐기창고’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런 형식의 ‘도서관’ 설립 자체를 문제삼거나 ‘예산 낭비’, ‘국민세금 남용’의 혐의까지 씌워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나칠뿐 아니라, 논점을 잘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혜의 숲 얘기를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은퇴하는 주인과 함께 현역에서 퇴장당하는 연구자나 전문인들의 방대한 소장본들 중 상당수가 재활용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화력발전소 연료나 펄프로 해체된다는 출판사들의 재고본들 중 상당수도 살아남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지혜의 숲은 그런 책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고 지금 서고와 서가를 채우고 있는 것도 그런 책들 수십만권이다. 그 책들은 누구에게나 연중 무료로 개방돼 있다. 지난 12일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후 책 기증자를 비롯한 학자와 문인, 저술가들을 초빙하는 무료 상설 강좌 프로그램 ‘인문학당’도 개설했다.
‘지혜의 숲’이 실은 기성개념의 도서관이라기보다는 확장형 북카페 또는 도서관과 북카페를 합친 퓨전형 도서 보관·전시·독서 공간이라면 또 어떨까. 문제는 기능과 효용성이다. 버려질지도 모를 책들과 기존 건물을 재활용해 더 많은 국민들이 책을 소중히 생각하고 더 가까이하게 하는 괜찮은 문화공간이 하나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도서관이든 북카페든 퓨전형 독서공간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도서관 하나를 제대로 짓고 정식 사서를 두고 운용하려면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돈이 든다고 한다. 물론 그런 도서관은 늘려야 옳고 또 그렇게 하도록 계속 요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도서관을 더 늘리고 책을 더 많이 구입하고 정식 사서를 배치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지혜의 숲’과 같은 시도가 양립 불가능한 모순관계일까?
지금까지 7억원이 들어갔고 앞으로 5억원이 더 투입될지 모른다는 지혜의 숲 예산을, 책을 구입하고 정식 사서도 두는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출판인·사서 교육과 고용에 쓰는 게 옳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정도의 돈을 염출하는 것조차 지금 국가정책과 출판계 사정상 쉬운 일이 아니며, 더욱이 매년 그런 돈을 확보하는 건 당장은 어렵다. 기존 건물을 활용하고 기증에 의존하면서 ‘권독사’라는 이름의 자원봉사 사서를 두는 ‘고육책’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지혜의 숲 쪽은 밝혔다. 그게 도서관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탓하는 건,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좋은 도서관을 더 많이 만들라고 출판계가 일치단결해서 촉구하고 요구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 한겨레신문 201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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