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22 11:03
‘인사동과 쌍벽’ 답십리 고미술상가… 150개 상점 하나하나가 ‘작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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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흥선 대원군·추사 김정희 작품 등 고미술품 25만여점

출입문 앞에는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나무토막을 엮은 병아리장이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선시대 때 쓰던 놋수저와 호롱이 보인다. 옆에는 돌을 갈아 만든 흑백의 바둑돌이 바둑판과 함께 놓여 있다. 파란 용이 꿈틀대는 청화백자도 눈에 띈다.

조선시대의 한옥집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곳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는 고미술품 상점 ‘천고당’의 내부다.

천고당은 국내 1호 고미술품 상점이다. 주인인 천세영씨(53)는 아버지가 1950년대에 세운 가게를 이어받아 26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는 “파는 물건이 그냥 물건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물품들이다보니 볼수록 자꾸 빠져들게 되더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고미술품 상점‘ 천고당’에서 주인 천세영씨가 청화백자를 들고 있다. | 동대문구 제공

그동안 몇 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 단위의 물건까지 안 팔아본 물건이 없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여러 차례 물건을 사갔다. 천씨는 “정승들 초상화 그린 것을 담아두던 ‘영정함’을 아주 어렵게 구했는데 이거 팔 때는 좀 내주기 싫었다”며 웃었다. 가게를 꽉 채우고 있는 가야·신라·조선시대 자기들 역시 팔기 싫을 정도의 애착을 가지고 모은 물건들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는 천고당과 같은 고미술품 상점이 150개나 모여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상점 하나하나가 ‘작은 박물관’이다. 상인들은 짧게는 1960년대부터 멀게는 삼국시대의 것까지 오래된 물건들을 거래하고 있다. 옛 시절 생활용품·가구·그림은 물론 심지어 돌탑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오래된 물건은 다 모여 있다.

1983년부터 인사동·황학동·아현동에 있던 고미술품 상인들이 답십리로 모여들면서 고미술품 상가가 형성됐다. 이 일대 상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고미술품만 25만여점으로 추산된다.

상인들은 수만점의 고미술품을 거래하며 생긴 경험 덕분에 수준급 감정도 할 정도다.

1970년대부터 주로 서찰과 그림을 팔아온 조규용씨(73·고미술상가번영회회장)는 서찰 전문가다. 그는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33인의 서찰 중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씨의 가게 안에는 흥선대원군·우암 송시열·추사 김정희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조씨는 추사 김정희가 60대 때 중국 베이징에 가서 쓴 책자를 꺼내왔다. “종이 중간중간에 금박이 박혀 있는데 그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종이였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외국의 미술품 수집가들, 역사학자들에게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보물같이 소중한 장소다. 30년 넘게 천씨 가게의 단골인 이필근씨(71)는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고미술품 상점을 가봐도 여기처럼 작품이 좋고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200여점의 고미술품을 수집했다는 그는 “최근에 고미술 상가에서 단원 김홍도 선생의 작품을 구했는데 정말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고미술 상가 내 상인들은 상가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상가번영회를 만들고 상점에 있는 미술품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인사동 거리처럼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낙후된 건물도 개선하고, 문화행사도 더 많이 열 계획이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전통과 예술이 공존하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며 “고미술 상가를 문화명소로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201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