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8-14 10:26
“회색 거리 밝혔던 화려한 포스터, 한 시대가 그 안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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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네 멋대로 해라’(1960) 포스터를 설명하는 이진원 한예종 교수. 문소영 기자)
(사진2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에 전시 중인 1950~60년대 외화 포스터. [사진 대전시립미술관])
(사진3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사진 대전시립미술관])
(사진4 영화 ‘벤허’(1959) 포스터. [사진 대전시립미술관])

영화 포스터에 빠진 음악사 전문가

6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지금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로 가 보자. 일단 건물부터 1958년에 농산물 검사소로 세워진 국가등록문화재 제100호 근대건축물이다. 게다가 ‘총천연색 70미리 대형영화’임을 강조한 ‘벤허’(1959) 포스터, ‘마리린 몬로-, 토니- 커-티스, 작크 래몬’이 주연한 ‘정말 뜨거운 영화’라고 씌어 있는 ‘뜨거운 것이 좋아’(1959) 포스터 등 옛 외화 포스터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그 시절 영화관을 드나들었던 세대에게는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그보다 아래 세대에게는 마치 시대극에 들어온 듯한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초등생 때 영화 홍보 카드 수백 장 모아

이 전시 ‘영화의 얼굴, 거리의 예술’ (8월 27일까지)에는 1950~60년대 외화 포스터들이 총 57점 나와 있다.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이진원(55) 교수의 소장품이다. 놀랍게도 그는 영화사가 아니라 한국음악사 전공 교수다.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특별전에 가 보면,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土偶)를 통해 한국 고대음악을 설명하는 이 교수의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는 어쩌다 빈티지 외화 포스터에 빠지게 된 것일까?

대전창작센터에서 중앙SUNDAY와 만난 이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음악사 연구 자료로 유성기(축음기) 음반을 모아왔는데, 그 중에 영화음악 음반도 많아요. 그러면서 영화음악 LP 음반도 함께 모으게 되었고, 한번 정리를 해보자 하고 2007년에 『한국영화음악사 연구』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을 내고 나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졌죠. 영화음악 음반 커버에는 그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흥미를 끌더라고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카드’(1970~90년대 한국 극장에서 배포하던 카드형 영화 홍보물) 앞면에 나오는 포스터 이미지가 좋아서 몇백 장 모았거든요. 그래서 아예 포스터를 모을 생각을 한 거죠.”

그는 지금까지 1200여 점의 포스터를 수집했다. 한국 영화보다 외국 영화, 특히 1950~60년대에 수입된 영화들의 포스터에 주목해서, 여기에 해당하는 포스터가 240여 점에 이른다. “한국 영화 포스터들은 한국영상자료원에 정리가 많이 되어 있는 반면에, 외화 포스터는 모으는 사람이 없어서 사라질 위기에 있었으니까요”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게 결국은 시각예술이잖아요. 1950~60년대, 공공미술이랄 것이 없던 그 시절에 이렇게 화려한 색채의 포스터가 회색의 거리에서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한 거죠. 또 지금에 와서는 그 시대를 읽어내는 그릇도 되고요. 그래서 이런 포스터들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교수는 포스터를 수집하면서 2019년부터 21년까지 블로그 ‘영화는 인생의 거울’에서 블로그 주인 ‘록’(필명)과 함께 ‘희귀 포스터 데카메론’이라는 글을 100회 연재하기도 했다. 이 연재물이 이번 전시의 밑거름이 되었다. 연재 1회에 다룬 포스터는 알랭 들롱 주연의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 한국판 포스터로서, 이번 전시에도 나와 있다. 연재물에서 이 교수는 이를 프랑스판, 일본판과 꼼꼼히 비교하며 설명한다. 다른 외화의 한국 포스터들 역시, 미국·유럽 등 제작 본국의 포스터와 한국의 영화 수입 통로였던 일본의 포스터와 함께 비교한다. 그는 연재에서 다룬 100편의 영화 중에서 끝내 구하지 못한 한 편만 빼고 99편을 모두 찾아보는 ‘덕후’ 정신을 발휘했다.

포스터 값? 팔고 사는 사람 마음에 달려

“사실 1950~60년대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 영화를 수입해 오면서 포스터도 일본의 것을 가져와서 썼어요. 일본 글씨는 손으로 덧칠을 해서 지우는데, 배경에 맞춰 정교하게 해야 하니까 그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죠. 그리고는 한글 문구를 입히고 디테일을 좀 다르게 해서 인쇄를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일본판 포스터와 디자인이 비슷하지만 어떻게든 차별화 하려고 노력한 점들이 보여서 흥미로워요” 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1959년 기점으로 100편이 넘는 외화가 수입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게다가 한국 영화 제작 편수는 외화 수입 편수를 뛰어넘었다는 게 더욱 놀랍다”고 덧붙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몇 년 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한국인이 영화에 쏟았던 열정이 결국 오늘날 K-무비의 세계적 성공을 낳지 않았을까.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Q한 시대에는 일상적으로 흔했지만 시대가 지나면 쉽게 사라져 버리는 문화에 특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A“그게 전통음악 연구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전통의 단절로 옛 음악이 살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유성기 음반, 즉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부터 1965년 사이에 발행됐던 78회전으로 돌아가는 음반들에서 그 전통의 조각을 찾습니다. 이들은 재생하면 잡음이 너무 많지만, 연구와 보존의 가치가 엄청납니다. 그런 데 관련해서 LP 음반도 모으고 그 커버에 담긴 이미지를 보면서, ‘이런 이미지도 사라지는 음악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 시대에 활발히 소비되다가 사라지는데 누군가는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모으기 시작했어요. 특히 영화음악 관련한 정보가 있는 포스터에 주목하며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독일 영화 ‘제복의 처녀’(1958)의 한국판 포스터에는 당대 인기 가수 송민도가 주제가를 불러 킹스타 레코드에서 취입했다는 선전 문구가 있습니다. 이건 음악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지요.”

Q학부에서는 화학을 전공하셨다면서요.
A“카이스트 들어가기 전에 배운 퉁소와 대금이 좋아서 카이스트 들어가서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국악 공부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공부 자료가 너무 없어서 유성기 음반과 음반 출시를 알리는 옛날 신문 광고 등 온갖 자료를 찾아다니다 보니 그것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자료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새로운 자료로 기존의 역사적 사실로 굳어진 것을 바꿀 수가 있잖아요. 그러던 중에 고음반연구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결국 전공을 바꿔 서울대 대학원으로 가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중국으로 유학 가서 중앙음악학원에서 박사를 땄지요. 좋아하는 걸 더 제대로 좋아하려고 공부하고, 공부를 하려고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Q이런 빈티지 포스터는 가격이 어느 정도 하나요? 그리고 소장품 중에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이 있다면?
A“포스터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파는 사람 마음과 사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죠. 저 ‘벤허’ 포스터는 1972년 재개봉 포스터로 기존 포스터보다 훨씬 대형으로 나와서 가치가 있는 것인데, 18만원이라는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했죠. 온라인 경매에 나왔을 때 보존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사람들이 입찰을 많이 안 했기 때문이었어요. 또 ‘태양은 가득히’ 포스터는 인터넷 경매에서 80만원 정도에 팔리는 걸 보았는데, 이제는 저렴한 가격으로 여겨지죠. 가격을 말할 수 없이 제게 귀중한 포스터 중 하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1960) 포스터입니다. 지난해 고다르 감독이 타계했을 때 그를 추모하며 학자들이 그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쏟아냈는데, 그 중에 한국 학자를 포함한 전세계 13명의 학자들이 쓴 책이 있었어요. 그런데 책에 그 학자들 나라 버전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가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 것만 없었다는 거예요. 그 한국 교수님이 한국판 포스터를 찾고 찾다가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한예종을 통해서 연락을 해 왔어요. 그래서 제가 소장한 포스터 사진으로 한국판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를 그 책에 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때 정말 뿌듯함을 느낍니다.”

- 중앙일보 2023.8.12 문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