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수집벽`을 학문적 발견으로 승화시킨 남자
검사출신으로 필적학자 된 구본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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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 변호사가 흑피옥 조각상에 새겨져 있는 산목(算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목은 우리 민족의 셈문자로 알려져 있다. 뒤로 보이는 것은 그가 수집하고 있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글씨들이다. [김호영 기자]
이 남자의 '일생의 수사'는 성공할까. 21년간 조직폭력배를 소탕한 강력부 검사였고, 30년 가까이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조폭과 살인범들 자술서를 들여다보다 필적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독보적인 글씨 수집가이자 '필적학자'가 됐다. 흡사 작은 전통박물관 같은 아담한 사무실에서 구본진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50)를 만났다.
"쇼핑벽이 수집으로 승화된 케이스지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 모으는 버릇이 있어요. 처음에는 독립운동가 글씨만 모았습니다. 현재 650여 명의 친필 1000점 정도인데, 제가 아마 글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루는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이 '글씨가 사람을 말한다'는 필적학을 하고 있으니, 친일파 글씨도 함께 모아보라고요. 그래서 친일파 글씨도 200명 정도 모았어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글씨는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고 크기가 일정할 뿐 아니라 각지고 힘찬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빠르고 크기가 들쑥날쑥하며 행 간격이 좁고 아래로 길게 뻗는 경우가 많지요."
지식까지 수집하는 남자랄까. 구 변호사를 '지식 노마드'로 만든 힘은 집요한 수집벽인 것 같았다. 시계면 시계, 그림이면 그림, 차(茶)면 차, 다양한 분야의 수집 경험담과 방대한 지식을 쏟아냈다. 사무실에서 종종 피운다는 향(香) 담은 그릇 하나, 보이차를 마시는 다기와 찻잔 하나도 족히 수십 년은 된 것들이었다. 그런 그가 우리 민족의 원형을 연구하다 고대 글씨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어린아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가 네오테니(neoteny·어른이 되어서도 젊은 태도와 행동을 가짐)라 이름 붙인 아이 같은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라는 건 좋은 성향이에요. 변덕스럽고 감정적이지만, 자유롭고 순수한 추진력과 호기심이 있으니까요. 한국 사람을 칭찬하려고 쓴 책은 아닌데, 장점이 많은 민족이라는 결론이 나왔죠."
5년간 수십 번씩 고치고 10분의 1로 축약해가며 썼다는 책 '어린아이 한국인'은 필적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을 내용들로 채워졌다. 구 변호사는 "중국 글씨를 모방하려 애썼던 조선 말고 더 이전 글씨를 분석해야 진짜 우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고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단군신화와 홍산문화까지 공부하게 되더라. 하면 할수록 필적학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의 필적이 궁금했다. 명함에 이름이 자필로 적혀 있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일 것 같다고 하자, 그는 "통이 작은 사람은 아니죠"라고 운을 뗐다. 아내 필체는 성격처럼 차분하고 정갈하고 부드러운데, 딸의 필체는 자기를 닮아 잘되려는 욕구가 강하단다. 그래서 부드럽게 쓰라고 권한다고 했다. 필체를 바꾸면, 내면도 바뀐다는 걸까?
"그럼요. 글씨는 아주 좋은 자기계발 수양법입니다. 저는 시간 날 때 A4용지를 꺼내놓고 글씨 다듬는 연습을 합니다. 편한 필기구로 다르게 써보는 연습을 하세요. 쉽지 않겠지만 꾸준히 해보면, 내 성격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구 변호사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30분 정도 '도인체조'를 한다. 그는 "국선도 비슷한 건데 간단하고 쉽습니다. 5년 전부터 향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정신이 붕 뜨거나 가라앉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20년 가까이 마신 보이차도 좋지요. 야생의 좋은 차를 마시면, 안 좋은 음식은 몸이 알아서 거부합니다."
구 변호사는 최고의 컬렉션을 만들어 기부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림 수집으로 시작했지만, 최고가 되고 싶어 글씨로 전향했다. 구본진 컬렉션이 완성되는 날까지, 그의 지적 탐험과 수집의 수사는 계속될 것 같았다.
[신찬옥 기자]
[ⓒ 매일경제 201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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