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세계기록총회 준비 총괄, 이상진 국가기록원장
세계기록관리협의회(ICA)는 도서관협회, 박물관협회와 함께 유네스코 산하 3대 문화기구로 꼽힌다. 1948년 설립된 이 기구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으며 199개 나라와 15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전세계 기록관리 기구와 관리자들이 기록 보존과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 교류하는 장이다. 4년마다 열리는 이 단체의 총회가 새달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한국이 회원으로 가입한 지 37년 만에 ‘세계 기록인의 올림픽’을 열게 된 것이다. 총회 준비를 총괄하고 있는 이상진(54) 국가기록원장을 지난 25일 성남에 있는 서울기록관에서 만났다.
새달 5일 서울서 기록관리협 총회
190개국 2천명 ‘역대 최대’ 규모
디지털 기록관리 협력방안 등 논의
“기록은 국격·국가경쟁력의 원천”
디지털기록 생산부터 통합관리는 한국유일
전세계 ‘경외 반 의구심 반’ 주시해
국가기록원은 1968년 설립된 정부기록보존소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확대 개편된 기구다. 설립 뒤 1급 관료가 원장으로 임명됐고, 인력과 예산도 크게 늘었다. 보존소 시절인 2003년 131억원이던 예산은 올해 580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인력도 131명에서 321명으로 2배 이상 많아졌다. 기록물의 중요성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2003~2007) 때 크게 늘어난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총회에는 190여개 나라에서 2천여명이 참가합니다. 역대 최대 규모이죠. 63개 나라에서 246편의 학술 발표를 하고, 학술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유료 회원도 1300명 이상 등록한 상태입니다.”
지난 2월 부임한 이 원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91년부터 서울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0여년 뒤엔 총리실로 옮겨 주요 보직을 거쳤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1급으로 승진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록은 국격과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란 점을 강조했다.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의 뛰어난 기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으로 국가의 격은 자연스레 올라가고 또 축적된 기록은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총회 기간에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우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 13건을 진본과 다름없는 복제본으로 함께 전시하고 조선시대 사관이 되어보는 체험마당 등을 마련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의 기록유산 등재 건수(13)는 아시아 1위, 세계 4위입니다. 실록을 보면 태종이 낙마한 뒤 신하에게 ‘낙마 사실을 사관에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사실적 기록을 남기기 위한 사관들의 노력이 컸죠.”
총회의 주요 의제는 ‘디지털 기록의 위기’를 극복할 해법 찾기가 될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디지털 자료는 키보드 한번 잘못 누르면 사라집니다. 안전한 관리가 중요하죠. 또 언제든 복사가 가능해 진짜인지 확인하는 문제도 중요해요. 예전 플로피 디스크를 지금 컴퓨터가 읽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독성 문제도 심각합니다.” 디지털 기록 시대의 세 화두인 ‘보전성과 진본성, 가독성’의 문제를 풀 방안을 중점 논의한다는 것이다.
기록원은 지난해부터 정부 기관에서 생산한 전자기록물을 이관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4년 전자문서 결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10년 뒤에 기록원이 이 전자기록물을 인수하도록 했다. 지난해 238만건에 이어 올해는 400만건 정도가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천년 넘게 이어온 종이기록물 시대를 마감하고 전자기록물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디지털 기록의 생산과 이관, 보존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은 세계에서 우리만 갖추고 있습니다. 외국 전문가들은 우리 시스템에 경외심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의구심을 가지고 진본성 등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됐는지 따지려 할 겁니다. (우리 시스템의 장점을) 잘 알려야죠.”
그는 서울 총회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기록 문화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기록을 축적해가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축적된 기록이 경쟁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게 해야 2만달러 시대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어요.”
지난 2월 세종시에 새로 문을 연 대통령기록관도 그가 관할하고 있다. 2007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생산한 기록물이 이관됐다. 박근혜 정부도 법규에 따라 퇴임 6개월 전부터 기록물 이관을 준비해야 한다. 시스템은 마련됐지만,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부터 기록물 생산과 이관, 등급지정의 적절성 등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참여정부에서 700만건, 이명박 정부는 천만건을 이관했죠. (이 기록물은) 소중한 인프라입니다. 관리를 제대로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정치적인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기록원은 보도자료에서 ‘사실을 구하기 위한’ 조선시대 사관들의 치열한 고투를 강조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록 관리를 위해 기록원이 해야 할 일은 뭔지, 물었다. “지금의 사관 노릇은 언론사가 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우리는 기록을 수집하는 구실을 하죠. 정부 기구에서 속기록을 작성하는 회의가 92개입니다. 제대로 작성하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기록을 남기도록 하는 게 (정부의) 정책 방향입니다.”
- 한겨례신문. 강성만 선임기자.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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