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필름검색실에서 신동민 연구원이 새로 들어온 필름을 점검하고 있다. 아날로그 및 디지털 복원에 앞서 거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사진2: 디지털 파일로 스캔된 필름은 원본에 있던 흠집과 훼손부분이 그대로 복사되기 때문에 2차 복원작업을 거쳐야 한다. 원본에 있던 훼손 부분이 복원된 모습.)
(사진3: 포스터 보존실에서 서혜인씨가 ‘임자 없는 나룻배(1932년 작)’의 포스터를 공개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영화 포스터로 원형 복원에 4개월이 걸렸다.)
(사진4: 훼손된 부분에 보수용 테이프를 붙이는 모습. 필름 한 컷 한 컷의 복원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사진5: 복원작업에 참여한 각 파트 직원들이 영사실에 모여 ‘오발탄(1961년 작)’을 감상하고 있다. 80년대에 수집된 이 영화는 2년여의 복원작업을 거쳐 올해 디지털 영화로 재탄생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현장을 찾아서
“이번 작업은 쉽지 않겠는데요. 퍼포레이션(필름의 양쪽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뚫린 구멍) 훼손이 너무 심하네요” 작업대에 걸린 필름 상태를 살펴보던 신동민(29) 연구원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이쪽 필름도 만만치 않아요. 시멘트(편집용 접착제) 편집 부분이 망가진 게 엄청 많아요” 동갑네기 성연태 연구원도 같이 한숨을 쉰다. 푸념도 잠시뿐, 두 연구원은 부지런히 필름을 돌려보며 훼손된 부분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아리랑(1926년 작·왼쪽)’과 국내외에서 네 번이나 리메이크된 ‘만추(1966년 작)’의 스틸사진. 두 작품 모두 지금까지 필름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새로 입고된 필름의 1차 복원작업이 한창인 이곳은 지난 5월 문을 연 한국영상자료원의 파주보존센터 필름복원연구실이다. 1974년 1월 한국필름보관소로 시작해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된 한국영상자료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문화서비스 공공기관이다. 기증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된 필름 대부분은 이곳 보존센터에서 보수와 세척과정의 아날로그 및 디지털 복원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영화를 반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필름의 상태가 온전해야 하고 적절한 보관 환경이 갖춰져야만 해 보존센터에서는 훼손된 필름을 새로운 필름으로 복사하는 아날로그 복원작업을 실시한다. 복사된 필름은 국내 유일의 영화필름 현상시설이 설치된 보존센터 현상실로 옮겨지고 현상된 필름은 최종적으로 보존실로 옮겨져 영구 보관된다.
필름보존실의 온도는 평균 섭씨 2도로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감싸온다. 1996년부터 영화필름의 의무 납본이 법으로 정해져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 대다수가 이곳에 보관되고 있다. 보존센터는 영화의 디지털 활용본 제작도 병행하고 있다. 1차 보수작업을 거친 필름은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고 원본에 가깝도록 색을 재현하게 되는데 고화질 스캐너 과정을 거치면 상영용 디지털 영화로 재탄생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복원작업에 참여한 각 파트 직원들이 영사실에 모여 ‘오발탄(1961년 작)’을 감상하고 있다. 80년대에 수집된 이 영화는 2년여의 복원작업을 거쳐 올해 디지털 영화로 재탄생했다.
보존센터 직원들이 상영실에 모였다. 최근 디지털 영화로 복원된 ‘오발탄(1961년 작)’을 함께 감상하는 자리다. 지난 2년여에 걸친 노력의 결과물이 꽤 마음에 드는지 스크린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표정이 흐뭇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제강점기 민중의 저항을 대변한 ‘아리랑(1926년 작)’과 한국 멜로영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만추(1966년 작)’ 등 사라진 우리 영화 1500여편을 모두 찾아 복원해 내는 그날까지 한국영상자료원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세계일보. 남제현 기자.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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