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 1927년 창간된 학술잡지 <한글>의 창간호가 가천박물관 창간호실에 전시돼 있다. 박물관 담당자가 보존상태를 고려해 유물을 다루고 있다. /사진제공=가천박물관
(사진2) ▲ 왼쪽부터 대한자강회월보. 소년. 육학년. 학생예원. 보성교우회보. 원고시대. 정음./사진제공=가천박물관
(사진3) <대한자강회월보>
(사진4) ▲ 가천박물관 창간호실 내부
(사진5) 근대적 종합 잡지의 형태를 띤 우리나라 첫 잡지 <소년>
전국을 뒤져 구했다, 발행기관도 보유 못한 1호 잡지들
개화기 때 처음 등장한 이후
정치·패션·영화·의학·스포츠 등
다양한 전문잡지 '근현대역사 관통'
무명작가 작품 발표 '원고시대'부터
민중 지식계발 도모 '대한자강회월보'
통일된 표준어규칙 제정 '한글' 등
창간 취지 뚜렷…사료가치 높아
세계 최초의 잡지는 1665년 프랑스에서 발간한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avants)>이라는 과학분야 정기 간행물이었다.
우리나라는 서구 문물을 접하기 시작한 개화기 때 최초의 잡지가 등장해 정치, 사회, 패션, 스포츠, 영화, 문학, 의학 등 다양한 전문 분야를 깊이 다루며 근현대 역사를 관통했다.
이런 잡지는 단행본과 다르게 일회성 독서물이라는 성격이 강해 단순히 소모되기 쉽다. 다음 호를 기다리며 지난 호는 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천박물관이 수집한 잡지 창간호 2만여점의 의미가 더욱 크다. 유실돼 행방을 알 수 없는 잡지의 수집 자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박물관 담당자들이 전국 헌책방과 개인 수집가들을 찾아다니며 보물찾기하듯 구해내기도 했다.
해당 잡지를 창조하는 취지와 배경이 녹아 있을 뿐 아니라 일차적 사료로써 가치를 지니는 창간호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가천박물관의 노력으로 이곳엔 어디서도 찾기 쉽지 않은 희귀본들이 가득하다.
잡지를 발행한 기관조차도 보유에 실패한 창간호를 가천박물관에서는 만날 수도 있다.
개화기 희귀본
근대의 자료들은 제작 당시 열악한 환경으로 인쇄와 제본, 종이 질이 좋지 못했다. 보존도 잘 안 돼 지금까지 원 상태를 유지하며 남아 있는 잡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가천박물관은 1906년에 나온 대한자강회월보나 전라도 출신 인사들이 모여 창간한 호남학회월보의 첫 호 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대한자강회는 교육개발, 산업발전, 외세배격을 목표로 조직된 계몽단체다. 김상범이 발행인을 맡아 주로 국내외의 학문과 소식을 전달하고 연설문과 소설 등을 실어 민중의 지식계발을 도모했다. 1907년 7월25일 통권 13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낙동친목회학보
경상도 출신 유학생들이 결성한 낙동친목회에서 발행한 국판 크기 42쪽 분량의 잡지다. 신교육 전파가 목적이었던 이 잡지의 창간호는 국내 최대 잡지 소장처인 '아단문고'에도 없을 정도로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이다. 가천대박물관 창간호실에 전시돼 있다.
꿈을 실은, 소년·소녀들의 잡지 희귀본
이전 계몽단체나 학회에서 발행하는 잡지보다 근대적 종합 잡지의 형태를 띤 우리나라 첫 잡지는 <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잡지의 날'도 그래서 <소년> 창간일인 11월1일로 설정돼 있다. 가천박물관엔 <소년>의 창간호뿐 아니라 학생잡지의 명맥을 잇는 <아이들보이(1913년)>, 소파 방정환이 창간한 중학생 대상 잡지인 <학생(1929년)>을 비롯해 <진학(1946년)>, <소국민 육학년(1947년)>, <아동문화(1948년)>, <중학생(1949년)>, <학생예원(1952)>, <새벗(1952년)>, <학생계(1954년)>, <소년중앙(1969년)>, <월간 우등생(1976년)>, <보물섬(1982년)>, <소년챔프(1991년)> 등의 창간호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소국민 육학년> 제1호는 쉽게 찾기 어려운 희귀본으로 가치가 높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김기오가 설립한 문화당(현 미래엔)에서 1947년 9월20일에 창간한 학생잡지로 발행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다.
<소국민 육학년>
△중학생
발행인 심활은 창간사 '젊은 피는 끓는다'에서 이제껏 중학생을 위한 잡지는 없었다고 평하며 1949년 이 잡지를 창간했다. 창간호에 박종화의 '문학가가 되려면', 고재욱의 '신문기자가 되려면', 최은희의 '배우가 되려면'과 같이 현직에 있는 인물들이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조언하는 글을 실었다. 문예강좌 코너에는 김동리, 박목월, 조인현 등 유명작가의 글도 게재했다.
문학잡지 희귀본
가천박물관은 문학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발표되는 창구이자 신인작가의 등용문이기도 했던 문학잡지의 희소성 있는 창간호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본격적인 문예지로는 <조선문단(1924년)>, <원고시대(1928년)>, <문학건설(1932년)>, <낭만(1936년)>, <풍림(1936년)>, <문장(1939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원고시대>는 발행인 이정근을 비롯해 김기석, 서기영, 강영한, 장기제 등 문학청년들이 모여 만든 습작동인지로 희귀 문예지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종합잡지인 <개벽>을 통해 현진건, 염상섭, 최서해 등 유명 작가들이 작품을 실었으며 옥희로 유명한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는 <조광> 창간호(1935년)를 통해 처음 발표됐다.
△조선문단
1924년 10월1일 조선문단사에서 창간한 문학잡지이다. 발행인은 방인근이며 소설 무정의 이광수 작가가 주재했다. 주요한, 전추호(전영택), 방춘해(방인근), 최학송 등이 참여했다. 특히 이광수는 '문학강화'라는 제목으로 문학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좌를 싣기도 했다. 순수문학을 추구한 <조선문단>은 현상모집을 통해 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됐다.
<원고시대>
△원고시대
<원고시대>를 1928년 8월1일 발행한 원인사 소재지는 일본 도쿄로 되어 있는데, 서울 가회동에 원인사 임시사무소를 두고 이 잡지를 만들었다. 발행인 이정근을 비롯해 김기석, 서기영, 강영한, 장기제 등 문학청년들이 모여 만든 습작동인지다. 무명작가의 작품발표를 목적으로 한다는 창간취지에 맞게 '신인란'에 학생작가를 비롯한 신인작가의 글을 13개 작품이나 실었다.
잡지의 다양함과 깊이, 의학·학술·예술·체육·전문잡지의 창간
잡지문화가 뿌리내리면서 다방면의 잡지가 등장하는 가운데 의학.학술.예술.체육.전문잡지가 창간되어 그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게 된다.
△한글
<한글>은 1927년 2월10일 한글사에서 창간한 학술잡지다. 발행인은 신명균이며, 집필은 권덕규, 이병기, 최현배, 정열모, 신명균 등으로 조선어문연구회를 이루고 있던 주시경의 제자들이 주축이 됐다. 창간사에서 한글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어 규칙을 정하고 훌륭한 자전을 만들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창간호에는 '세종어제 훈민정음 원본'과 더불어 한글과 관련된 논문을 실었다. 1928년 10월 통권 9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동의보감
1916년 1월1일 전선의회에서 창간한 기관지이자 의학 학술지인 <동의보감>은 전염병, 외과학, 소독과 방역 등 의학정보를 소개하는 한편 한의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16년 4월 일제가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전선의회를 해체하면서 2권의 책을 내고 폐간됐다. 창간호를 가천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극예술
1934년 극예술연구회의 기관지다. 창간호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특집으로 꾸며졌으며, 연극 관련 논설과 극예술연구회의 활동상을 담았다.
/jjh@incheonilbo.com
/사진제공=가천박물관
인천일보. 장지혜 기자.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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