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2) ▲ 2015년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기념하여 개최된 창간호 특별전을 시민들이 관람하고 있다.
(사진3) ▲ 가천박물관 창간호 제작 프로젝트 '탄생! 우리집 매거진 제1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가정의 모습.
(사진4) #윤성태 가천문화재단 이사장·가천박물관장
시대 비추는 잣대, 지키고 알리는 건 사명
시대별 인쇄술·종이질 고려
보존에 최적화된 시설 갖춰
소장 창간호 '도록' 발간 준비
가치·의미 홍보 특별전 열어
인류 문명의 번영과 쇠퇴, 진보와 회한의 역사에 언제나 잡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련의 현상과 사건을 계기로 잡지가 만들어져 이를 기록하는 기능이 골자였으나 한편으로 어떤 잡지는 그 사회의 없던 특수한 유행과 여론을 조성하는 창조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슨 잡지를 왜 발행할 것인지는 발행인의 의지에 좌우된다. 잡지는 편집인의 개성이 가장 강력하게 반영되는 매체다. 발행인들은 잡지 창간을 '생명의 탄생'과도 같이 여기며 창간호에 의미를 뒀다.
1960년 5월1일 경희대학교 정외학회와 경상학회가 공동 발행한 <정경학보> 편집여록을 보면 “甘味(감미)로운 春風(춘풍)이 한 곂 觸覺(촉각)을 돋우고 擧世(거세)가 새 氣運(기운)으로 躍動(약동)하는 此際(차제) 여기 또 하나의 氣運(기운)으로 生命(생명)이 創造(창조)된다”고 적혀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부모가 정성과 사랑을 다 하는 것과 같이 잡지 한 권을 새롭게 내기 위해 발행인들은 수없이 고민하고 시련을 극복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과정을 '산고(産苦)'라고 표현했으며, 그렇게 태어난 잡지를 한두 권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실한 잡지로 오랫동안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양육'하고자 했다.
일찌감치 잡지 창간호의 도저한 중요성을 알아본 가천박물관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창간호를 보유하고 유일하게 전문 공간을 설치했다. 가천박물관은 시대의 정신과 역사를 반영했던 잡지의 가치를 드높이는 한편 창간호실을 통해 그들의 첫 탄생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으로 한국 간행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창간호실에 2만621권을 단순히 보유하고 전시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 문화유산이 시민 문화예술 활동의 매개가 되도록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더 다채로운 창간호의 수집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보존 최적화된 환경 유지
창간호실은 가천박물관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집한 보물, 창간호를 가장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기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특히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잡지들은 물론이고 1970년대에 발행된 잡지들마저도 쉽게 바스러지는 등 훼손 가능성이 있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더 그렇다. 우리나라의 인쇄 기술과 사정 상 책에 사용한 종이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천박물관은 전시실뿐 아니라 수장고도 온·습도에 민감한 종이에 안정적인 환경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박물관은 잡지 창간호 수집도 계속하고 있다. 역사 기록물의 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잡지들을 시간의 빈틈 없이 모으고 있으며 최근에 발행되는 창간호들도 다양하게 수집 중이다. 가천박물관은 100년이 지난 후 이 창간호들이 지금의 시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것을 보존해 후대로 전달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다하려는 것이다.
▲창간호의 활용
가천박물관은 시민들에게 창간호의 의미와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간호실'에서 상설전시로 공개하는 창간호는 박물관을 방문해 언제든 볼 수 있다. 특히 2020년에 전면 개편된 창간호실에서 더 쾌적하게 한국 잡지 120여년 역사를 함께할 수 있다.
가천박물관은 창간호를 주제로 한 특별전도 개최해 동시대인들과 잡지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했다.
2007년 12월에는 아동·학생잡지를 모아 '꿈을 담은 책, 소년·소녀들의 잡지' 특별전을 연 적 있다. 이어 2015년에는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하며 송도컨벤시아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창간호를 활용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추진했다.
'가천박물관 창간호 제작 프로젝트- 탄생! 우리집 매거진 제1호'로 가정이 직접 참여해 창간호를 만들어보는 과정이 올해 진행됐다. 가족이 한 팀으로 잡지 기획부터 편집디자인까지 잡지가 출판되는 과정을 경험해 보고 가족만의 이야기가 담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잡지 창간호를 만들어보는 기회였다. 교육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몸소 잡지의 발행인이 돼 보며 부모와 형제 자매끼리 공동 작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즐겁게 소통했다는 등의 소감을 밝혔다. 박물관측은 교육에 참여한 가족들이 잡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결과자료집을 곧 발행할 예정이다.
가천박물관은 또 소장 주요 창간호들을 모아 도록을 발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시를 통해 미처 보여주지 못한 창간호를 모두 담으며 창간호 안에 녹아 있는 중요 내용도 수록된다. 이번 도록을 통해 새로운 창간호도 공개할 방침이다.
#윤성태 가천문화재단 이사장·가천박물관장
“시민 일상에서 창간호 접하고 체험할 방법 고민”
1989~1992년 제16대 보건사회부 차관을 지낸 윤성태 가천박물관 관장은 당시 이길여 의학박사에게 양평길병원 소식지 창간호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의료취약 지역이었던 양평에 병원이 없어 정부 입장에서 고심하던 찰나에 이길여 박사가 흔쾌히 병원을 설립했었죠. 그러더니 얼마 후 이 병원 잡지를 만들었다고 창간호를 보내더라고요. 거기에 병원 건립 역사와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 의사들의 고군분투가 잘 나와 있어 참으로 유익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길여 박사가 양평길병원 소식지뿐 아니라 <인천길병원지>, <철원길병원>, <여의회보>의 창간호도 전달했던 일이 떠올랐다. 다시 찾아본 이 잡지 중 <여의회보> 창간사에서 이길여 박사는 “회지의 발간을 통해 자성하고 발전하며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하고 회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임해야한다”고 썼다.
“사실 의사가 의료행위 하는 것에 그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는 기록을 통해 병원과 단체 운영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았아요.”
이렇게 이길여 박사와 인연이 된 윤성태 관장은 가천문화재단을 맡게 됐고 박물관장으로 와서 가천박물관이 2만권이 넘는 창간호를 보존·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잡지의 발행인이 되고 또 우리나라의 창간호들을 수집해 왔더라고요. 가천박물관 창간호실은 이길여 박사의 정신이 정직하게 실천된 현장이었습니다.”
특히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길여 박사가 출산의 과정을 통해 사람이 탄생하는 것처럼, 기록물과 매체가 태어나는 산고(産苦)를 깊이 이해했다는 점이 오늘날의 창간호실을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가천박물관은 이 땅의 창간호를 구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엄숙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길여 회장의 영향을 받아 우리 직원들 역시 어디를 가나 습관적으로 창간호를 수집한답니다.”
보존과 관리는 기본이고 우리나라 유일·최대 창간호실을 학술적으로 고찰하며 시민들의 삶 속에 투영하는 작업도 윤 관장의 끊임없는 고민이다.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창간호를 접하고 체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홈페이지에서 창간호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장치를 구축 중입니다.”
/jjh@incheonilbo.com
/사진제공=가천박물관
-인천일보. 장지혜 기자.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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