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바다에 풍덩 빠진 느낌이었죠."
노병성(사진) 한국출판학회 회장이 가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가천박물관의 근대 잡지 창간호실을 본 첫 인상을 이렇게 밝혔다. 노병성 회장은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의 풍경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이었다"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잡지가 현재까지 잘 보존됐는지 궁금증도 생겼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인 기록물로 대표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끝난 이후에는 이렇다 할 기록물이 없다.
노 회장은 "다행히 조선왕조실록 이후 빈 자리를 신문과 잡지가 대신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면서 "가천박물관이 보존하고 있는 잡지 창간호는 그런 의미에서 국보나 다름없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역사적 증거"라고 했다.
가천박물관은 2만700여점에 달하는 창간호 잡지를 보유하고 있다. 규모가 워낙 방대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다.
잡지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이름을 갖고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출판물이다. 잡지영역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의 보도나 논평 등을 전파한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잡지가 한 나라의 상황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창간호는 더 특별하다. 창간호는 창간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서다. 그는 "수록된 서언, 취지서, 발간서 등에는 발행 당시의 시대상과 발행인의 의도가 응축돼 있다"고 했다.
창간호는 시대정신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감정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그는 "창간호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떤 감정상태였는가, 어떤 사안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알 수 있다"며 "콘텐츠의 감정구조가 독자의 감정구조와 상응할 때 그 잡지가 통상 널리 읽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대정신·당시의 사회적 감정구조 반영
세밀한 목록화 등 꼼꼼한 관리도 '탁월'
언제 어디서나 볼수있게 '디지털화' 중요
노 회장은 이런 의미가 있는 잡지 창간호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천박물관의 창간호실이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박물관에 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많이 모아 놓는다고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이를 어떻게 유지하고 보관하는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판학회는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잡지 120년, 시대정신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가천박물관 소장 잡지를 토대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학술대회를 앞두고 있다.
그는 "가천박물관의 경우 연도별 분류는 물론이고 세밀한 목록화 작업을 통해 창간호를 분류하고 있고, 현대적 시설을 갖춘 별도 수장고에 보관하며 귀중본은 방부처리를 하는 등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또 일반인들을 위해 도록을 발간하는 등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그는 가천박물관이 소장한 잡지 창간호를 '현재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구자로서의 바람을 말했다.
노병성 한국출판학회 회장은 "가천박물관 소장 유물 중에는 잡지 발행기관조차 보관하지 못한 창간호도 있다. 이런 창간호를 '현재화'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보고싶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면서 창간호를 디지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화한 창간호를 웹이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볼 수 있고, 해설을 들을 수 있다면 이 보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이라며 "창간호가 유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잡지로 존재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경인일보 2022.05.27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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