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토론토공공도서관 베이뷰 브랜치의 한국책 서가. 책은 수백 권에 불과하지만 따끈따끈한 신간을 만나는, 보물찾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 한국에서 기자로 일을 한 13년 동안 문화부에서만 11년을 보냈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다른 부서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바쁘게만 지냈으니, 문화부 기자만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미술, 음악, 문학 등 거의 모든 문화예술 장르를 돌아가며 담당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문화예술 관련 기사의 거의 모두는 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문화면 기사의 출발점은 책이었다. 단행본까지는 아니라 해도 기사를 쓰려면 최소한 활자로 된 팸플릿이라도 읽어야 했다. 취재는 전시나 공연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었으나, 어떤 기사가 되었든 관련된 책을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읽지 않으면 기사를 작성할 수가 없었다.
책 읽기가 일과 연관되어 있다 보니,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펼칠 시간은 별로 없었다(물론 게으른 탓도 크다). 이쯤 되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느긋하게 읽고 싶은 갈증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캐나다에 살러 오기 직전까지 기자로 일을 했으니, 한국에서는 그 갈증을 풀 기회가 별로 없었다.
캐나다로 건너오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기 갈증은 풀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이곳에서는 책과 관련한 일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나다살이 초창기에는 다른 이유로 책을 펼칠 여력이 없었다. 이민 보따리에 읽고 싶은 한국 책을 많이 넣어오기는 했으나 낯선 사회에 적응하느라 책을 읽을 여유가 별로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 캐나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 편하게 읽을 환경이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읽을 만한 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어로 된 책을 펼치기도 쉽지 않았다. 영어 책을 읽는 것이 많이 불편하기도 했거니와, 나로서는 읽고 싶은 한국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는 형제나 친구들이 책을 보내주겠다고 해도, 번거로운 일이라 선뜻 부탁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한국에 직접 주문을 하기에는 운송료가 부담스러웠다. 전자책을 구입하기도 했으나 종이 책장을 넘기는 맛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게다가 전자책으로는 구입할 수 없는 책들도 많았다. 한국에 갈 때마다 책을 사 온다고는 하지만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책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처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나오는 신간들은 내가 먹고 싶어하는 한국 음식처럼 맛있어 보였다.
아쉽기는 해도 이런 갈증을 해소할 방법을 나름대로 찾았다. 토론토에 한국 사람들이 적지 않게 사는(토론토와 그 인근에 10만명) 만큼 한국 책을 구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꼭 읽고 싶은 것을 만나기는 어려워도 읽을 만한 책은 곧잘 나타났다. 나는 몇 가지 경로를 통해 한국 책을 빌린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과 책을 돌려보는 것이다. 독서 취향이 비슷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책을 빌려주고 또 빌려서 읽으면 된다. 이 대목에서의 난관은 ‘책 신용’이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남들에게 책을 빌려줄 적에 책 아래에다가 내 이름을 적는다. 책 신용이 나쁜 사람에게 책을 빌려줬다가 몇 년이 지나 제3자에게 책을 돌려받은 적이 있다. 책이 돌고 돌다가 나를 아는 사람이 내 이름을 발견하고 나에게 돌려준 것이다. 책이 그렇게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에게 읽힌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지만 내가 책을 빌려준 사실조차 잊어버렸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책 신용이 별로 안 좋은 사람에게는 “이런 재미있는 책이 있다”며 빌려주는 것이 아무래도 꺼려지게 마련이다.
두 번째 방법은, 책 신용이 좋은 사람을 모아 ‘북클럽’을 만드는 것이다. 북클럽의 좋은 점은 많다. 각자가 가진 책을 서로 빌려 읽을 수 있고, 내가 빌려준 책이 나도 모르게 돌아다니거나 어느 집 책꽂이에 꽂혀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일 정도는 방지할 수 있다. 여러모로 좋은 기능을 가진 북클럽이라고 해도 모임의 목적에 걸맞게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정기 모임이 책 내용을 이야기하고 책 정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잡담만 하는 평범한 술자리로 변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물론 술자리가 파하기 직전 각자 가져온 책을 부랴부랴 빌려주고, 빌려준 책을 돌려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국서 11년 문화부 기자 할 때는 정작 읽고 싶은 책 제대로 못 읽어
캐나다에 온 후 지인들과 책 돌려보기·북클럽 등 통해 아쉬움 풀어
정이현·최은영…공공도서관 서가에서 ‘숨은 보물’을 발견해 행복
내가 토론토에서 한국 책을 구하는 방법은 한 가지 더 있다. 토론토시가 운영하는 토론토공공도서관(이하 토론토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빌릴 수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토론토도서관은 1884년에 설립되었고 지금은 등록 회원이 120만여명에 이른다. 토론토 시민 3분의 1 이상이 도서관 회원인 셈이다. 토론토도서관 숫자는 모두 100개. 그 가운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노스요크 인근 지역 5개 도서관에 한국 책 코너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한국 책 코너들은 책이 수백 권에 불과할 정도로 그 규모가 작다. 책이 많지 않다고 해서 간단하게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십수 년 전에 경험했다.
토론토에 사는 나 같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 뉴스를 접하는 곳은 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책 기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문화예술과 관련해서는 대중문화 기사가 압도적이어서 과거 종이 신문에서 보던 ‘신간 안내’를 만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종이 신문이야 넘기다 보면 접할 수 있었지만 포털 사이트 뉴스 코너에서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 살 적에는 어떤 책이 어떻게 나왔으며 어떤 평을 얻고 있는지를 거의 저절로 알 수 있었지만, 외국 사는 사람이 한국의 출판 동향을 아는 것은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 사는 사람에게 토론토도서관은 신간을 소개하는 좋은 창구가 되기도 한다. 볼만한 책이 별로 없다며 토론토도서관 한국 책 코너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주 가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토론토도서관에서 여러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우선 서가에 꽂힌 책들 대부분이 손때를 많이 타서 반들반들하다. 특히 박완서, 황석영, 김훈, 김영하 같은 유명 소설가의 책들은 앞뒤 표지에 투명 테이프를 몇 번이나 붙여야 할 만큼 낡았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빌려봤다는 얘기다.
이런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가끔씩 새 책들이 눈에 띌 때가 있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 막 공수해온 ‘따끈따끈’한 신간인데, 나는 그런 책을 만날 때마다 보물을 주운 듯한 기분이 든다. 토론토도서관은 부족하나마 나에게 한국의 2000년대 소설을 소개하는 통로였다. 물론 통로가 대단히 좁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어쩌다 보물 하나를 발견하면 그 책과 관련한 정보는 온라인에서 무진장 건질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갔더니 내가 모르던 ‘정이현’이라는 소설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소설집이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달콤하고 행복했다. 이런 소설을 만나면, 그다음부터 ‘덕질’이 시작된다. 온라인으로 작가와 작품을 검색하고, 한국에 갈 때마다 그 작가의 책을 구해온다. 정이현에 이어 토론토도서관에서 만나 내가 덕질을 해온 작가가 김애란, 조해진, 황정은, 장강명, 정세랑, 장류진, 천선란 등이다. 정보가 부족하여 작가들을 폭넓게 알지는 못해도, 토론토도서관 덕분에 비교적 깊게는 읽고 있는 셈이다.
재작년에 토론토도서관에서 진짜 보물찾기를 했다는 기분이 든 적이 있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가 서가에 꽂혀 있었는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작가의 소설집이었다. 책 표지가 조금 낡은 것을 보니 늘 대출 중이어서 내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별로 기대하지 않고 펼쳐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최은영의 소설을 읽고 내가 흥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21세기에 박완서를 새로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최은영에 대한 덕질을 시작해서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애쓰지 않아도> 등 작가가 출간한 책은 대부분 구해 읽었다. 마음 같아서는, 요즘 유행하는 ‘북콘서트’ 같은 행사라도 열리면 비행기를 타고 가서라도 참석하고 싶을 정도이다. 한국에 계속 살았더라면 아마도 이런 애절함 같은 것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애절함이 있는 곳에는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소소한 재미도 나름 있게 마련이다. 지난 1월 새해 인사를 하려고 어느 어른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그분은 “나한테 최명희 <혼불> 전질이 있는데 가져가겠느냐”고 물으셨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서가가 있는 방에 들어가서는 “요즘은 눈이 아파서 책을 못 읽는다”며 다른 책들도 손에 잡히는 대로 빼서 주셨다.
집에 와서 받아온 책들을 넘기면서 책 앞뒤에 적혀 있는 감동적인 문구들을 발견했다. 이런 것들이다.
“보고 싶은 나의 막내 동생네, 김응하 보아라. 올케와 조카들도 보아라. 1986년 11월5일에. 서울서 글쓴이 누이 김자림.”
한국에서라면 이사를 다니는 와중에 진작에 정리되었을 책들을 여기서는 ‘바다를 건너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책 앞장에 위와 같은 문구라도 적혀 있다면 그 책을 가족처럼 소중하게 여겼을 법하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1970~1980년대에 출간된 오래된 책이나 그 책 속에서 이런 문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외국살이하면서 얻게 되는 작은 즐거움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도서관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봄밤>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도서관 풍경을 보고 많이 놀랐다. 한국을 방문했다가 북카페가 있는 작은 공공도서관을 가보고는 더 놀랐다. 한국에서는 이제 그 누가 되었든 책 살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게 생겼다.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없어 봐야 귀한 줄 안다.’ 토론토에서 한국 책을 구해 읽기 어렵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처럼 게으른 독자에게는 큰 복일 수도 있겠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 경향신문 2023.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