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1-09 15:25
“모든 鐘엔 전설이… 그 소리 울리면 영혼까지 맑아져” 鐘 수집가 이재태 경북대 교수

미국 필라델피아 심장연구소 연구원 시절, 골치 아픈 연구활동에서 잠시 벗어나 인근 서점에 들렀다가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자유의 종(鐘)’을 발견했다. 그때가 1991년 4월쯤인가? 미국 독립선언을 알린 종이지만 자신의 미래를 밝혀줄 징표로 여기고 5달러를 주고 샀다. 이듬해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보건원에서 연수받을 때는 숙소 앞 전철역에서 할머니들이 마련한 바자회를 느지막이 찾아 신데렐라, 백설공주 모양의 종 10개를 10달러를 주고 모두 사기도 했다. 이렇게 종 수집에 손을 댄 것이 어언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집한 종은 8000여 개. 이제는 수집한 종으로 박물관에서 개인 전시회도 열고 전문가로서 종의 ‘진품명품’을 감정하는 반열에 올랐다.

지난 4일 종 수집가이자 경북대 의대 핵의학과에 근무 중인 이재태(54)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 책장은 종으로 인테리어돼 있었고 바닥에도 종들이 널려 있었다. “바람 부는 산사의 풍경,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종, 어린 시절 들었던 학교종, 외양간 소 방울(워낭), 새벽녘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 지금은 사라진 기계식 시계종 등 각종 종들은 주로 낭만과 추억을 돌이키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중국 황제시대나 잉카문명에서는 종을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는 등 쓰임새가 가지각색이에요.”

이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종은 유리, 나무, 흙, 금속, 동물 뼈 등 재질이 다양했다.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경 페르시아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종도 있었다. 그가 10년 전 구입한 것으로, 이란 북부 고원지역인 루리스탄(Luristan) 지방의 것이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엄청나게 생산된 청동으로 종을 만들어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축의 목에 달았다. 이 종은 1900년대 초 발굴된 것으로 고고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5년 전 인터넷 경매를 통해 산 ‘여왕(Queen)’이라는 종은 몸통은 나무로 얼굴과 손은 코끼리 상아로 돼 있다. 1700년대 작품이다. 그가 산 종 중에 가장 비싼 600만 원짜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격추된 독일군 전투기를 녹여서 만든 종도 있다. ‘V(빅토리)종’으로 종에는 영국 처칠, 미국 루스벨트, 소련 스탈린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은색과 금색으로 도금돼 있다. 승전한 영국이 전쟁 당시 전사한 공군들의 가족을 돕기 위해 설립한 ‘영국공군사랑펀드재단’이 1946~1948년 사이 만들어 판매한 종이다.

그는 종 수집가답게 남다른 애착과 집념으로 얻은 산물도 있었다. 미국 유명 조각가인 제리 밸런타인의 종을 몽땅 산 것이다. 이 조각가는 1972년부터 1996년까지 매년 단 1개의 종을 제작했다. 또 이 기간 크리스마스 스페셜로도 종을 제작하는 등 모두 43개의 종을 만들었다. 이 조각가는 톰 소여, 잔 다르크, ‘노트르담의 곱추’의 집시 여인인 에스메랄다 등 유명 인물을 형상한 종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이 종을 1999년부터 2006년 사이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뒤져 모두 샀다.

이 교수는 초창기 주로 해외 연수나 학회 참석, 여행을 통해 종을 사 모았다. 이후 1990년대 후반 미국 종수집가협회에 가입, 본격적인 수집활동을 했다. “이때부터는 미국, 영국, 독일에서 발행된 종에 대한 책을 꼬박꼬박 구입해 읽고, 인터넷으로 종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넓히면서 인터넷 경매를 통해 종을 주로 샀지요.”

그는 종 수집이 과거 추억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5~6학년 때 새로 나온 우표를 사기 위해 우체국 앞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곤 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이런 모습과 미국 연수 시절, 악착같이 종을 팔기 위해 하루 종일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는 안쓰러운 노점 할머니의 모습이 뇌리에 겹치면서 종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됐다.

이 교수는 엑스레이 촬영과 필름 현상 때 일정 시간을 정해주기 위한 경보용 탁상 종(Desk Bell)이나, 진료실에서 간호사나 환자를 부를 때 누르는 탁상 종 등은 실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종에는 영혼도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종은 지리적으로 널리 분포돼 있으며 뚜렷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따라서 종을 둘러싼 전설도 많아요. 액막이로 동물, 건물, 수송기관에 걸어두는 종, 저주를 일으키거나 마법을 없애기 위한 종도 있어요. 특히 종교의식에서는 죄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믿음과 영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위해 종을 울리기도 해요. 또 애국의 상징과 전쟁기념물로도 귀중하게 여겨졌는데, 침략자는 저항의 상징을 없애기 위해 피정복자의 종들을 신속히 제거하기도 했어요.”

그는 이러한 종을 구입하면서 갖가지 우여곡절도 겪었다. 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벼룩시장(flea market)에서 종처럼 생긴 주전자 도자기를 들다가 뚜껑이 떨어져서 깨지는 바람에 당시 10만 원을 변상해 주기도 했다. “10년 전 경매사이트에 300여 년 전 카리브해에서 난파된 해적선에서 건진 종이라고 올라와서 샀어요. 그러나 알고보니 1960년대 멕시코의 한 업체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것으로 사기를 당했지요. 종에 녹슨 것처럼 칠해 놓고 골동품이라고 한 사기꾼의 농간에 넘어간 적도 있는 등 각종 피해를 입기도 했지요.”

그는 이러한 속임에 빠지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미국 종수집가협회 활동을 했고 종 관련 감정 전문가로서 국내 내로라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협회 회원은 대부분 연세가 든 분들인데, 이들은 종에 대한 지식이 정말 방대해요. 꼼꼼히 따져보고 묻고 하면서 결국 사기 예방도 했지요.” 그는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의 종 가격 책정 섭외는 물론, 개인 구매자의 진품 여부 확인 등 다양한 요청을 받고 있다. 그는 “종은 국제적으로 많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 책정과 진품 여부 확인은 자신만의 일반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교수는 의외로 국산 종은 별로 소장하지 않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기념종, 기업체 판촉물용 종 등이 고작이었으며 대신 장난감 자전거종 등 금속으로 된 일부 종을 우리나라에서 미국 등에 수출한 것을 산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종이 많이 생산됐는데 이제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주로 만들어요. 한국이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노동 집약적인 종 제작은 동남아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는 8000여 점의 종을 의대 연구실과 진료실 복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경북 영천시의 시골집 마당, 자신의 집 등에 진열해 두고 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점은 보관이라고 했다. 특히 금속으로 된 종들은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거나 부식될 수 있고, 기계식 종들은 녹이 끼어 작동이 잘되지 않아서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희귀한 종들은 문명의 유산이기도 한데, 훼손하거나 파손할 경우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틈만 나면 종의 표면을 관찰하고 울림을 느끼면서 상태를 점검하고 있어요.”

이 교수는 그동안 모은 종의 전체 가격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대부분 외국산으로 가격이 상당해요. 여기에 운송비와 관세도 만만찮게 들었어요. 전체 가격은 비밀이고 교수 월급의 많은 부분을 투자한 것 정도만 알아줘요. 가치로는 따질 수 없죠”라며 웃었다.

그는 충북 진천군 종박물관의 요청으로 수집한 종을 테마별로 나눠 2009년부터 ‘세계의 종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 하반기엔 ‘내가 아끼는 수집품 종’이라는 주제로 예술적이고 희귀한 종만 골라서 전시하는 것을 끝으로 5년간의 전시회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는 전시회마다 출품하는 400∼500점의 종을 혼자 정리, 배치하고 적절한 해설도 붙여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종 수집은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취미이자 동반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여유를 주는 나만의 작업이지요. 아름다운 종들을 잘 관리한 뒤 나중에 사회에 환원하는 사명감도 갖고 있어요.”


- 문화일보 2013.01.09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1090103344300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