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증맞은 작은 술병. 순간 호기심이 솟았다.
미니어처 술병을 6000개 가까이 수집한 손법동(65) 씨. 그는 중학시절부터 수집벽이 있었다. 충남 당진 출신인 그는 당진중학교 시절 여행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김찬삼의 세계 여행기는 물론 외국인이 쓴 여행기까지 200여 권을 모았었다. 서울사대부고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그는 한국외국어대(68학번)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하고 현대양행(두산중공업의 전신)에 입사, 해외영업본부에 근무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중학시절의 수집벽을 잊고 살았다.
1984년 회사 업무차 뉴욕에서 런던을 가는 비행기를 탔다. 옆자리에 앉은 영국 여자 두 명이 핸드백에서 미니어처 술병 몇 개를 꺼내 들더니 서로 비교하며 자랑하는 것 아닌가. 순간 ‘필(Feel)’이 꽂혔다. “너무 예뻐 보이더라고요. 어디서 산 것이냐고 묻자 뉴욕 5번가 골목의 리커숍(liquer shop)에서 샀다며 자세히 이야기해 줍디다.”
런던에서 일을 본 후 남는 시간에 그는 벌써 뒷골목의 주류 판매상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미니어처 술병 수집 취미는 1989년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여행사를 창업하면서 본격화됐다. “그해 여행사 설립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됐어요. 해외여행객이 봇물처럼 불어날 것을 예상해 여행사를 차렸죠. 여행사라도 뭔가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건축 관련 해외연수 및 컨설팅을 전문으로 했지요.”
대동여행사는 3년 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현재는 연수와 컨설팅이 주 업무인 ㈜대동국제산업조사연구원만 운영하고 있다.
여행사를 한 덕에 안 가본 국가가 거의 없고 그래서 그의 수집품 또한 세계적이다. 45평 아파트에 다 진열을 하지 못해 절반은 진열장에, 절반은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
그가 각별한 추억이 담긴 미니어처 술병들을 테이블에 진열해 놓고 관련된 수집과 관련된 일화를 들려준다. “이것들은 1985년경 이집트 카이로에 갔을 때 수집한 것인데, 또 다른 취미의 하나인 골동품을 사러 다니다 돈을 다 썼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미니어처 술병을 파는 곳을 발견했죠. 10여 개를 집어 들고 카드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오직 현찰만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냥 놓고 오기는 아깝고, 망설이고 있자 종업원이 선글라스와 구두를 벗으라고 하더군요. 구두는 국산 금강제화 것이라 옳거니 하고 다 벗어줬죠. 대신 슬리퍼를 하나 얻어 신고 한국까지 왔다니까요.”
“이것들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 온 것인데, 40여 개는 큰 가방에 넣고 5개만 핸드캐리하고 있었는데, 공항에서 큰 가방을 날치기 당했어요. 아마 날치기꾼들이 나보다 더 실망했을 겁니다. 내겐 보물이지만 그들에게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경비행기로 50분 정도 더 들어가는 오지 어촌마을 뒷골목에서 우연히 미니어처 술병을 파는 곳을 발견한 후 그걸 사느라 일정을 하루 늦추기도 했다고 한다. 손 씨는 “컬렉션은 사람을 근성 있게 만든다. 업무차 반복되는 해외여행이지만 새로운 것을 찾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한 번도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별별 모양이 다 있다. 전구, 윔블던테니스 대회 기념품인 테니스공 모양 술병에 마야 목각인형 병, 석유통, 보스턴백 모양 등등. 그 중에서도 특히 아끼는 술병은 주 업무인 건축과 관련된 것들. “그리스에서는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유적지를 모티브로 한 미니어처 술병을 만들어 관광 상품으로 팝니다. 이것들은 네덜란드 전통 건물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실 한국을 알릴 만한 관광 상품이 거의 없다고 보는데, 문화재를 모티브로 한 미니어처 술병을 만들면 훌륭한 관광 상품도 되고 새로운 산업도 될 것 같습니다.”
작은 술병이지만 숫자가 엄청나니 돈도 꽤 들지 않았을까. “수집하는 데 크게 부담 가는 가격은 아니에요. 보통 4∼5달러면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100달러 넘는 것들도 있어요. 근데 6000개 정도면 돈 좀 썼겠는데요.”
그는 요즘도 하루 와인 1명은 마시는 와인 애호가. 집에 와인 냉장고까지 갖추고 있다. 미니어처 병 안에 든 술을 홀짝 마시고 물을 넣어둔 것은 아닐까? “자연히 알코올이 날아가 반쯤 남은 병도 있긴 있지만 수집품의 술은 절대 마시지 않아요. 간혹 집에 온 친구들이 예쁘다고 하나 달라거나, 한번 마셔 보자고도 하는데, 차라리 큰 양주나 와인을 병째 줍니다.”
부인(조문숙·55)도 한때 향수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부인 취미라기보다는 그가 귀국할 때마다 선물로 사다 준 것들이어서 사실상 그의 취미였을지 모른다.
“향수를 한 300개 사다줬는데, 처음에는 예쁘다고 화장대에 진열하고 들여다보고 하더니 싫증이 났는지 친구들 다 나눠 주고 요즘은 몇 개 안 남은 것 같습디다. 마누라는 수집가 될 자질이 없었던 거죠.”
손 씨 부부는 수집품 때문에 방송에도 출연했다. “1990년대 후반으로 기억하는데 KBS 아침방송에 ‘우리는 수집가 가족’이라고 해서 소개됐었지요. 근데 그 방송을 보고 일본 위스키 회사인 산토리에서 찾아왔습디다. 양주병을 디자인하는 데 참고하겠다며 수집품 하나 하나를 모두 촬영해 갔어요. 국내 회사에서는 안 왔어요. 일본과 한국의 기업 경쟁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지요. 요즘 국내 주류회사 몇 군데에서도 미니어처 병을 만들어 팔던데 그냥 큰 병의 축소판에 그쳐 예술성이 떨어져 수집 가치는 없다고 봐야지요.”
그는 1990년대 막 수교한 중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미니어처 골동품 수집에 나섰다. “요즘은 물건이 나오지 않아 사고 싶어도 못 사는데 그때만 해도 보물급 골동품들이 많았죠. 골동품 가게에서 사면 비싸니까 큰 도시의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신문지 깔고 앉아 밤새 기다리다 시골에서 골동품을 팔러 오는 사람들과 손짓 발짓으로 직거래했어요. 그때는 우리 돈 1만 원만 주면 소장가치가 있는 물건을 살 수 있었죠.”
이렇게 수집한 게 300여 점. 이 중 스님들을 인솔해 중국 방문을 했을 때 우한(武漢)의 야시장에서 헐값에 건진 미니 화병은 나중에 베이징(北京) 골동품 전문점에서 송(宋)대 보물급이라는 감정을 받았다고 한다. 미니어처 술병 장식장과는 달리 미니어처 골동품이 들어 있는 장식장 두 개에는 모두 자물쇠가 달려 있는 것으로 상당히 값이 나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손 씨는 요즘 더 이상 컬렉션을 하지 않는다. 놔둘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란다. 대신 자신의 수집품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 중이다.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를 하다 요즘 쇼핑호스트를 준비 중인 딸과, 자기 엄마와 현재 카페를 하고 있는 둘째 아들이 카페 장식용으로 활용하겠다고 서로 유산으로 달라고 해요. 하지만 20여 년간 모은 수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봐 줬으면 합니다. 박물관 같은 곳에서 전시하겠다면 골동품과 함께 기꺼이 대여할 생각입니다.”
- 문화일보 2013.02.06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20601033433006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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