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보세요. 군복 입은 아이가 몇 살이나 된 것 같습니까.”
15일 만난 김영준(62)씨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민군 아이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는 “제가 갖고 있는 자료만 훑어봐도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라면서 “한반도에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 우리 민족이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시간여행’이라는 고미술상점의 대표인 김씨는 스스로를 한국전쟁 자료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민간인이라고 소개했다. 20년간 모아온 전쟁 자료만 해도 4000여 점에 달한다. 그는 오는 7월 27일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할 전시회 등을 기획 중이다. 당시 뿌려진 전단(삐라)이 2000장이다. 휴전협정이 진행될 당시(1951년 7월 10일~1953년 7월 27일) 대규모로 뿌려진 것들로 내용이 대부분 원색적이다. ‘원수는 미국놈’, ‘이승만 매국도당’과 같이 한·미 연합군을 비난하는 식이다.
자료 중 김씨가 가장 아끼는 건 한강 도강증(渡江證)과 피란민 증명서다. 당시 한강을 건너려면 미군 헌병사령부가 발급한 도강증이 필수였다. 피란민 증명서도 생명줄과 같았다. 김씨는 “지금 와서 보면 허름한 종이 한 장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증표와 같았다”면서 “이것보다 비싸게 산 자료가 많지만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쟁둥이다. 자신의 수집 열정을 출생의 비밀에서 찾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 후인 1950년 겨울, 갓난아기인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3년 후에야 고향인 서울 용산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는 “전쟁둥이로 태어나서인지 무엇인가를 통해서라도 전쟁의 시대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전쟁 자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2011년 중국 단둥과 옌볜 지역에 한국전쟁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대부분 일본의 고미술상들이 싹쓸이해 갔다고 하더라고요. 경제적 가치 여부를 떠나 기록의 가치를 아는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전쟁의 자료는 역사는 물론 비극을 막기 위한 교훈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충분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 서울신문 201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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