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년째 세계 각국의 병따개 5000여 점을 수집해 오고 있는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이 지난 22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자택에서 수집품에 대해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병따개 수집광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
“우리 마누라가 골치 아픈 남자랑 사는 거야. 해외에 갔다 오면 손자 며느리가 다 가방을 열어 보는데, 나오는 건 선물은 하나도 없고, 병따개, 병아리 인형 뭐 이런 거니까 처음엔 애들이 실망이 크더라고. 하지만 이제 애들은 으레 할아버지가 어디 갔다 오면 아무것도 없다는 거 알아. 여행경비를 빠듯하게 가져가서 내 거 사기 바쁜데 선물을 어떻게 사겠어?”
‘수집광(狂)’ 김훈동(69) 씨는 아내에게는 ‘골치 아픈 남자’, 손자들에게는 ‘여행을 다녀와도 선물 없는 할아버지’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농협을 거쳐 문인 등단과 수원시립미술전시관장 등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책을 거쳤고, 지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수원지회(수원예총)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세계 각국의 병따개를 올해로 42년째 수집하고 있다. 경기 이천 농협지점장을 할 당시인 1972년 OB맥주 이천공장 준공행사에 초청받아 홍보관에 들렀다가 병따개가 진열돼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시작한 일이다. 그가 지금껏 모은 병따개는 모두 5000여 점이다.
지난 22일 찾아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빨간 벽돌 2층집은 전체가 하나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1층 거실에는 병아리 모형과 술병이 가득찬 진열장이 따로 놓여 있고, 2층 거실에는 3개의 병따개 진열장과 한쪽 방에 책 진열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진열장에 들어 있는 병따개들은 어느 것 하나 눈길을 붙잡지 않는 것이 없었다.
“지구상 웬만한 나라의 병따개는 다 있다고 보면 됩니다. 모양도 다양하고, 재질이나,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도 제각각이지요. 우리나라에 흔하디 흔한, 냉장고에 붙이는 병따개를 생각하면 안 되고요,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이에요. 병따개 하나만 보더라도 그 나라의 산업발전사, 공업기술, 디자인, 예술세계 등을 알 수 있습니다. 모양도 동물에서부터 그 나라의 문화유적, 인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답니다. 중국 같은 경우엔 만리장성, 영국은 대처 총리 영결식 때 동작을 멈춘 빅벤(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있는 시계탑의 대형 시계)처럼 그 나라의 역사와 모습이 다 담겨 있어요. 또 평면적인 병따개가 있는가 하면, 입체적인 것도 있지요.”
이 병따개들을 모으는 데 얼마나 들었을까? “우리 돈으로 치면 개당 5만 원대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말한 김 회장은 “사실 수집인생을 살려면 돈이 좀 들게 마련이지만 제 경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적절히 물물교환 방법을 쓰는 덕분이다.
그의 집 1층 거실 진열장에 놓여 있는 1000여 점의 닭 모형과 200여 점의 술병, 200여 종의 거북 장식물은 모두 김 회장이 희귀 병따개를 얻고자 할 때 내놓는 소장품들이다. 그가 갖고 있는 술병에는 실제로 술이 들어 있어 애주가 손님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그는 그러나 “수집품이어서 마실 수 없다”고 눙친다. 커다란 진열장도 주워온 거다. 그는 “어느 날 양장점 앞을 지나는데 ‘가져가도 됨’이라고 씌어 있어 남정네들을 동원해 진열장을 가져오고 점심을 샀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병따개 수집가에게 병뚜껑을 따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쳐지는지도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숟가락, 젓가락으로 뚜껑을 따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심지어 이빨로 따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회 인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죠. 유럽에서는 다소 점잖지 못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병따개 5000여 점을 모은 그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다. 세계 200여 국가 중 남미쪽을 가보지 못한 것이 그렇다. 요즘은 독일어 공부에도 열심이다. “매년 9∼10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 다양하고 진귀한 병따개가 진열되거든요. 올해는 열심히 공부하고, 내년에는 거기에 가서 축제도 보고 병따개들도 실컷 구경하고 싶어요. 물론 맘에 드는 건 꼭 구해와야 되겠죠?”
그는 일생을 수집생활로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족들 모두 우호세력이 돼 물물교환 물품을 관심 갖고 챙겨올 정도인 데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애들에게도 좋은 교훈을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수집을 통해 스물여덟에 혼자 되신 어머니가 저를 키운 것에 사무치게 감사하게 되는 등 마음의 성숙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또 자신이 수집한 물품과 늘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안으로 삭였노라고 말해 순간 숙연한 마음이 들게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 문화일보 ‘마니아 3.0’을 본 수집마니아 중 자신에게 병따개를 교환해줄 독자의 연락을 기대하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수집품들과 기꺼이 교환할 용의가 있어서다.
김 회장이 애지중지 모은 병따개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주류회사로부터 박물관에 기증할 용의가 있는지 제의받았어요. 또 판촉회사로부터 기증 의사를 제의받은 적도 있고요.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짓수를 좀더 늘려 보고,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언젠가는 줘야겠죠.”
그는 앞서 2010년 평생 모은 잡지 창간호 9458권을 수원시에 기증했을 만큼 수집에 관해 일종의 ‘사명의식’같은 걸 갖고 있는 사람이다. “수집생활은 저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수집은 속도를 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좋은 물건이 나에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여유를 갖게 하는 게 수집의 묘미가 아닌가 싶어요. 수집학이란 게 있었으면 제가 체득한 것에 대해 설(說)이라도 풀어 보련만…”이라고 말하는 그는 ‘수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 문화일보 20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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