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5-08 15:22
1만명 사인 수집… 비법은 매달리는 것 - 사인 수집가 채창운 씨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50801033430023004 [457]

사인 수집가 채창운(66) 씨는 현재와 과거를 함께 살아간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 박경리·김지하 등 문인, 김연아·박세리·박찬호·우사인 볼트 같은 국내외 스포츠 스타는 물론 갓 데뷔한 아이돌 가수까지 1만여 명의 사인을 받고 모았다. 종이는 물론 ‘배우라면 영화포스터에, 축구 선수는 축구공에, 아나운서는 마이크에’ 같은 식으로 받은 사인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에 위치한 그의 개인 ‘사인 박물관’에 빽빽하게 전시돼 있다. 하지만 사람수로는 1만여 명, 여러 명이 한 곳에 사인하기도 해 개수로는 6000여 점에 이르는 사인은 약 99㎡(30여평)의 박물관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그의 주거 공간까지 침입해 집 곳곳에 마치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머리 희끗한 어른이 방한 스타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몇시간씩 공항에서 진을 치고 때로는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이를 잊은 열성적인 이색 취미가’ 정도가 떠오르지만 그에게 ‘사인 수집’은 평생을 바쳐온 진지한 ‘수집 인생’의 한 챕터다.

그는 20대부터 전국을 돌며 수석을 모으기 시작해 초기 TV, 라디오, 전화기 등 생활사 관련 물건을 수집하다 2000년대 들어 사인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모았다. 사인 역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특이한 이색 취미가 아니라 과거를, 역사를 남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를 최근 일산 그의 빌딩 지하에 자리한 사인박물관에서 만났다.

―사인 수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2002년 평생해온 자영업을 접게 됐어요. 일에서 은퇴하니 당연히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지요. 나는 평생 술 마실 푼돈을 아껴 물건을 수집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앞으로 일정하게 들어올 수입도 없으니 돈이 들지 않으면서 수집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됐지요. 그게 사인이었습니다. 사인을 받는 데 필요한 것은 버스비 정도의 돈과 튼튼한 다리면 충분했어요. 그 다음엔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과의 싸움이죠. 일선에서 은퇴한 나에게 시간은 충분했지요.”

―1970, 80년대 수집해 용인의 한 박물관에 전시한 TV, 라디오, 전화기 등 생활사 물품이 2.5t 트럭 30대 분량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사인 수집 이전에 어떤 것들을 모았나요.

“20대 때부터 수석, TV, 라디오, 전화기, 시계, 칼, 지포 라이터, 학생용품, 주방기까지 온갖 것들을 다 모았습니다. 청계천 벼룩시장과 황학동 도깨비시장 등을 뒤지고 다녔지요. 30여년간 모았으니 없는 게 없지 않겠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소품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수집에 몰두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나는 1947년생으로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었어요. 그때 모두가 어렵고 부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모으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게 평생 이어진 것 같습니다. 초기 TV, 라디오, 전화기 같은 물건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고 고장난 것을 고쳐 소리가 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온갖 물건들을 들고와 집에 쌓아뒀으니 어땠겠어요. 가족들은 말 그대로 나를 그냥 내놨지요. 그래도 하루 일과 중 내 일을 마친 뒤에야, 진짜 술 먹을 돈을 아껴서 수집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집하다 보니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시간을 모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를 쌓는다는 느낌이었지요.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형 인간입니다.”

―사인을 받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유명도’뿐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물입니다. 유명 정치인, 유명 선수, 유명 배우뿐 아니라 60년 무사고 운전자, 최고령 검정고시 합격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찾아가 사인을 받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사인은. 또 사인을 받으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사람들이 누구 누구의 사인이 있느냐고 묻곤 하는데 웬만큼 유명한 사람 사인은 거의 다 있어요. 오히려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또 나에겐 모든 사인이 다 귀중하고 모두 제각각의 에피소드를 갖고 있어요. 테니스 선수 마리야 샤라포바 사인을 받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8시간을 기다렸고,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 사인을 받기 위해 그가 묵고 있는 호텔을 5번이나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사인수집가로 사인을 받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지요.

“원래 워낙 신문을 좋아해 신문을 열심히 읽고 스크랩을 합니다. 이렇게 신문기사를 통해 사인 받을 사람을 찾으면 기사를 쓴 기자나 관련 협회에 전화를 걸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나 위치를 문의하기도 합니다. 워낙 오랫동안 사인에 매달리다 보니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알려줘도 나에게는 알려주는 경우도 있어요. 또 나이든 사람이 공항이나 호텔 로비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면 눈에 띄어서인지 경호원들이나 관계자들이 받아주기도 합니다.”

―앞으로 사인 이외에 새로운 수집에 도전할 생각은 있는지. 그리고 계획은.

“사인이 나의 마지막 수집품입니다. 다만 수집한 사인을 개인적으로 관리하기 너무 힘들어 공공기관 등에 전시할 공간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게 나의 바람이자 남은 계획입니다. 아들이 둘 있는데 사인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요. 지방자치단체 같은 곳이 원한다면 모두 기증할 뜻도 있어요. 공공의 공간에 전시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 사인 모았나 박정희대통령 사인… 중고서점서 찾아내


채창운 씨의 사인박물관에는 사회 각 분야 유명인들의 사인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 소설가 박경리·박완서·조정래·김훈, 시인 김지하·고은, 마라토너 이봉주, 피겨 여왕 김연아, 프로 골프선수 최경주·양용은 등 끝이 없다. 배우 쪽에서는 배용준·김태희·문근영·최민식·박중훈, 개그맨 박지선까지 웬만한 배우와 탤런트들의 사인은 다 모여 있다. 채 씨의 말처럼 있는 사람을 꼽는 것보다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 이와 함께 야구선수들의 사인볼은 500여 개, 축구 사인볼도 500여 개에 이른다.

국내 유명인뿐 아니라 FC 바르셀로나 소속의 프로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 장대높이뛰기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 피겨 영웅 미셸 콴, 아사다 마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헤르타 뮐러 등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 유명인과 스타도 포진해 있다. 또 미국에 있는 지인과 친척들을 동원해 댈러스대 치어리더들 전부의 사인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이 모든 수집품들이 하나 하나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인이다. 이는 그가 1980년대 청계천 고서점에서 산 책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이던 1962년 3월 20일의 사인이다. 이와 함께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LG트윈스 선수들 사인볼도 귀중한 수집품 중 하나라고 꼽았다. 유명인의 희귀 사인이 많다 보니 간혹 고가에 매입하겠다는 요청도 있다고 한다. 한 번은 한 일본인 관광객이 찾아와 이승엽 사인볼을 고가에 사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으나, 그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사인 수집품은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사인 이전에 수집했던 상당량의 1970, 80년대 생활물품들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개인 박물관, 창고, 집 등에 흩어져 있는 수집품에는 구한말 자석식 전화기, 1964년에 생산된 금성 TV 191, 금성 라디오 501 등을 포함해 TV 300여 대, 라디오 500여 대, 전화기도 500여 대가 포함돼 있다.



- 문화일보 201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