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4-20 13:54
[물성예찬]<5>1950, 60년대 가요LP 애호가 곽동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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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20406/45328531/1 [588] |
손끝으로 바늘 내리는 맛, 지지직… 떨림으로 다가와
《 어둠이 사방을 감싸 안았다. 문틈으로 불빛과 함께 새어나오는 ‘짜그락짜그락’ 소리. 구슬픈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 위로 가수 백설희(1927∼2010)의 ‘봄날은 간다’가 애잔하게 흘렀다. LP음반 애호가 곽동춘 씨(73)의 시간은 그 순간 오롯이 음악으로만 채워졌다. LP 1000여 장이 한쪽 벽면을 메운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자택에서 4일 그를 만났다. 》
‘알뜰한 당신’이 실린 가수 황금심의 음반을 손에 든 곽동춘 씨는 “음악이 목소리를 압도하는 스테레오 음반보다 음악이 잔잔히 가수를 받쳐주는 모노 음반이 더 좋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임플란트, 10명중 3명 실패한다! [속보]턱에서딱소리가 난다면..클래식이나 1980년대 포크송 LP 좀 모았다 하는 ‘강호의 고수’는 제법 많다. 그러나 곽 씨의 컬렉션은 1950, 60년대 국내 LP음반에 집중된다. “어둑해질 무렵에는 백설희의 절절한 음색으로 ‘아벡크의 토요일’을,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을 때는 손인호가 편안하게 부르는 ‘울어라 기타줄’을 턴테이블에 겁니다. 기분이 한껏 경쾌해진 날엔 경기민요 음반을 집어 들지요. 발성이 분명하고 강약고저를 기가 막히게 표현하는 남인수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그는 ‘묻지 마 수집가’이기를 거부한다. 좋아하는 가수와 곡목을 중심으로 음반을 모으고, 소장 음반에 대해 속속들이 알며, 음반을 자주 듣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드웨어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값비싼 기기라고 해서 음악 자체를 바꿔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1980년대 초반 중고시장에서 손에 넣은 ‘스테레오 뮤직 시스템’이 지금껏 그의 벗이다. CD플레이어는 고장 난 채로 둔 지가 한참. 2시간 반이 넘도록 ‘mp3’라는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CD는 음반을 꺼내자마자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기기에 쏙 넣은 다음엔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요. LP는 다릅니다. 빽빽하게 꽂힌 LP를 한 장씩 넘겨가며 고른 뒤 넙적한 LP를 재킷에서 꺼내 먼지를 텁니다. 음반 상태만 봐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려놓지요. 이 번거로움이 LP를 듣는 이유입니다. 디지털에 없는 ‘손맛’이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곽 씨는 10대 때 일자리를 구하려고 고향인 경북 봉화에서 서울로 왔다. 교통부 사환, 미아 방지 명찰을 파는 외판원 등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짐했다. ‘돈을 벌고 여유가 생기면 좋은 판을 사서 들어야지!’
제대한 뒤 카메라 부속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일이 성공을 거뒀고 1970년대 후반부터 음반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포크송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그를 사로잡았던 옛 전통가요 LP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고물상들이 그날 거둔 물품을 들고 청계천변에 모이는 오후 5시쯤이면 그의 눈이 빛났다.
“빽빽하게 줄지어 선 LP판을 뒤지고 또 뒤졌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손도 새카매졌죠. ‘방앗간 처녀’가 실린 남백송의 음반을 처음 발견하고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요. 대부분 이렇게 한 장 한 장 품을 팔아 구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남인수의 10인치 음반 10종, 1965년경 다이아몬드레코드에서 발매한 이인석 등의 ‘눈 내리는 영등포역’, 1964년 신세기레코드에서 나온 윤일로의 ‘항구의 사랑’을 비롯해 임화춘 힛트앨범(태도레코드), 정향 가요힛트앨범(도미도레코드) 등은 희귀음반으로 꼽힌다. 그의 컬렉션은 전통가요 연구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쉽게 듣기 어려운 곡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녹음을 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도 자주 받는다.
전통가요에 대한 관심은 원로 가수들에게로까지 이어졌다. 반야월(1917∼2012), 백설희, 손인호(85), 정향(84) 등과 꾸준히 만남을 가졌다. 가수들도 갖고 있지 않은 음반은 CD로 만들어줬다. 음이 튀거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불량 LP’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너끈히 고쳐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 결과”란다.
“LP를 듣는 일은 기차여행과 비슷합니다. 기차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려가지만 그 소리가 거슬리지 않고 도리어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요. LP에서 피할 수 없는 잡음 역시 제겐 정겨운 소리입니다.”
- 동아일보 2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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