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이 두꺼운 한지 위를 한걸음에 내달린다. 곧 갈기를 휘날리는 말 한 마리가 태어난다. 금세라도 종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첫 선에서 딱 느낌이 와요. 말을 그릴 땐 갈기부터 긋는데, 이게 잘되면 좋은 그림이 나오지. 어떨 땐 50장에 선만 긋다가 제대로 된 걸 하나도 건지지 못하기도 해요. 그러면 종이한테 엄청나게 미안해. 항상 선 긋기 전 붓한테 ‘부탁한다’고 말한다니까요.” 》
1973년 ‘권율장군’으로 데뷔한 뒤 ‘장길산’ ‘싸울아비’ ‘삐리’ ‘토끼’ 등을 통해 조선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온 역사만화가 백성민 화백(64). 그의 만화는 붓을 이용한 힘 있는 선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다수 만화가들은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본소(만화방) 만화 시장이 열리면서 만화를 대량으로 쏟아내야 했고, 만화가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붓을 버리고 펜을 택했다. 요즘은 다시 유행이 바뀌어 컴퓨터가 대세다. 하지만 화백은 요즘도 붓을 고집한다. 아주 세밀한 묘사가 필요할 때만 붓펜을 사용한다.
“난 옛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펜으로 그리면 한국적인 선이 나오지 않아요. 붓은 규칙적이지 않은 선을 만들거든. 농사꾼의 핫바지나 시골 초가집, 광대의 춤사위, 매의 맴돎은 붓으로 툭 치면 나와. 하지만 펜으로 그리면 무언가 딱딱해요. 여유가 없지.”
백 화백은 중국 붓과 한국 붓, 일본 붓이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중국 붓은 무르지만 강한 표현을 하는 데 좋고, 일본 붓은 단단하고 날카로워 섬세한 표현을 하는 데 좋다는 것. 한국 붓은 중간 정도라고 했다. 조선 시대를 그린 그의 만화는 의적이 참형을 당하거나 백정이 소를 잡는 등 처연한 장면이 많았다. 이때는 중국 붓으로 그려 강한 느낌을 극대화했다.
2001년 태종 이방원의 일대기를 그린 ‘上자下자’ 이후 그는 한동안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3년 반 동안 작업실에 누워 잠만 잔 뒤 다시 털고 일어났다. 이번엔 만화 특유의 칸을 허물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자유롭게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붓과 먹으로.
어느 날 백 화백의 딸이 그가 그린 그림을 스캔해 인터넷 블로그에 올렸다. 정겨운 붓놀림에 실린 사람 내음 가득한 이야기에 디지털 네이티브도 열광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2007년엔 블로그에 있는 그림 이야기 중 대표작들을 묶어 ‘광대의 이름’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정적인 동양화에 동적인 만화를 결합한, 새로운 ‘만화 그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동양화 등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더 자유롭게 붓을 가지고 놀듯 그릴 수 있는 건지도 모르죠.”
백 화백의 붓통엔 30자루가 넘는 붓이 꽂혀 있다. 선물로 받은 10만 원이 넘는 붓도 있지만 대부분 2000∼3000원 주고 산 것들이다. 그날 기분에 따라 하나씩 꺼내들어 그린다. “동네 문방구에서 산 싼 붓이 비싼 붓보다 좋다”고 했다.
“비싼 붓은 그으면 내가 의도하는 대로 가요. 재미가 없지. 하지만 싼 붓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선이 나오는데, 그게 기가 막히게 좋을 때가 있거든. 그렇게 그린 지금의 내 그림은 30년 같이 산 마누라 같아. 무덤덤하게 그냥 옆에 있는, 그런 것.”
- 동아일보 201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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