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쓸 필기구를 전날 저녁 미리 챙겨두는 남자가 있다. ‘내일 원고 교정 볼 게 있었지. 빨간 수성펜 2개면 되겠다. 0.7mm짜리로 밑줄을 긋고, 0.5mm로는 첨삭을 해야지. 강의 중간에는 카페에 가서 원고를 써야 하는데 몽블랑 만년필이면 될 것 같다. 같은 색 펜이라도 종류를 달리해 번갈아서 써야지. 한참 못 만났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우니까.’
중년 남자의 설명을 듣던 기자가 끼어들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전날 연필을 미리 깎아 필통에 넣어두던 것과 똑같은데요.” 남자는 겸연쩍게 웃었다. “아∼그러네요.”
경기 수원시 경기대 예술대에 있는 박영택 교수(49·미술경영학과)의 연구실 문을 열었을 때 기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대형 책장이 진입을 가로막았고, 이를 피해 오른쪽 벽을 따라 돌아가자 ‘책장 정글’이 이어졌다. “(책이) 1만 권 가까이 된다”는 박 교수의 연구실에는 흔한 소파와 테이블조차 없다. 연구용 책상과 의자 하나 외에는 책장뿐이다.
박 교수가 책장 아래 서랍을 열자 필기구들이 제멋대로 누워 있었다. 족히 수백 개는 돼 보였다.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색의 볼펜과 연필, 해외 출장길에 사왔다는 물고기 모양, 손바닥 모양, 사람 얼굴 모양 펜…. 몽블랑 만년필과 샤프펜슬, 그리고 파버카스텔 연필 같은 고가의 수입 필기구들은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모셔놓았다. 1989년 박사학위를 받고 큐레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모으기 시작했다는 필기구가 600점 가까이 된다.
박 교수는 흔히 쓰고 버리는 필기구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지우개가 달리고 감각적인 색채를 두른, 매끄러운 표면에 비교적 짧은 길이의 파버카스텔 연필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습니다. 검정과 청색 잉크를 머금은 몽블랑 만년필에서 촉촉한 잉크가 줄줄 흘러나와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자를 쓸 때는 사뭇 경건해지죠.”
그는 필기구를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필기구는 내 연장된 신체들이고 내 안의 것들이 몸 밖으로 외화(外化)되기 위해 불가피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도 있지만 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낼 때 말고는 쓰지 않는다. 항상 수첩과 펜을 챙기고 다니며 순간 떠오른 생각을 적어내려 간다.
중년의 남자 교수가 예쁜 필기구에 집착하는 것을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교수는 껄껄 웃었다. “여학생들이 독특한 필기구를 꺼내 쓰고 있으면 제가 ‘어디서 샀느냐’거나 ‘줄 수 없느냐’고 꼭 물어요. 이 때문에 스승의 날 선물로 필기구를 선물하는 학생도 많죠.”
미술평론가인 그는 미술작품이나 필기구를 고르는 게 결국 같다고 말한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좋은 작품을 고르는 것과 문구점에서 아름답고 기발한 디자인의 필기구를 골라내는 건 ‘미(美)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똑같다는 것. 하나하나가 ‘작품’이기 때문에 잉크가 다 닳아도 펜은 버리지 않는다.
연구실에는 필기구 외에도 책과 음반(CD) 수백 장, 작고 귀여운 수십 개의 장식품, 크고 작은 미술품들이 빼곡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와이프가 제가 뭘 쌓아두는 것을 싫어해서 집에는 제 책상도 없어요. 모든 수집품은 제 연구실에 있죠.” 연구실이 정글처럼 변한 이유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행여 수집품들이 상할까 옆걸음으로 조심조심 좁은 통로를 빠져나왔다. “게걸음이네요”라며 박 교수가 웃었다.
글 쓰는 행위를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글꼴을 이루며 흩어지는 의식과 감정을 우울하게 내려다보는 것’이라고 정의한 그의 바람은 소박했다. 모은 필기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편애 없이 두루 사용하는 것. 가능하다면 죽기 전까지 모두 쓰고 가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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