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리스트가 기타 여러 대 가진 게 진귀한 일이냐’고 물을 작정이라면 김세황(41)을 찾아가는 게 좋다. 록 밴드 ‘다운타운’ 멤버로 데뷔한 그는 가수 신해철이 이끄는 넥스트의 기타리스트로 발탁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이어 김진표와 노바소닉을 결성해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비발디의 ‘사계’를 전자기타와 현악의 협연으로 녹음해 발표했다. 그는 200여 대의 기타를 소장하고 있다. 전자기타가 주종이지만 포크 기타, 클래식 기타부터 인도의 기타 모양 악기 ‘시타르’까지 다양하다. 앰프 10여 대, 이펙터(기타 소리를 변조해주는 장치) 수백 대도 그의 소장품이다. 》
아끼는 기타들 틈에서 포즈를 취한 김세황은 “특정 기타나 앰프의 소리를 흉내내는 가상악기가 판치는 현실이지만 실제 악기의 입체적인 소리는 따라잡을 수 없다. 무엇보다 기타는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가장 섹시한 악기”라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7억원 돈벼락 맞은 회사원 죽어가는 치아? 뽑지말고 푸코바스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복층 오피스텔. 위층의 다락처럼 좁은 공간에 기타 케이스 20여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긴 몇 대 없는데…”라며 머쓱해하던 그가 “친구 집이나 교회 등 다섯 군데에 기타를 분산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친구의 별장 한 곳에 모든 기타와 앰프를 모아놨다고.
그가 요즘 주로 사용하는 기타는 야마하 SG3000을 포함한 3, 4대에 불과하다. 기자가 “많으니 한 대만 달라”고 하자 그는 대답 없이 웃었다. “기타는 제게 앨범 속 사진과 같아요. 기타를 보면 제가 이걸 언제 어떻게 썼는지 돌아보게 되죠. 식당에서 전람회의 ‘유서’가 나오면 ‘아, 내 뮤직맨 EVH!’ 하고, 축구 보려고 TV 틀었다가 ‘아, 내 킬러 기타, 잘 있나!’ 하죠.” 한국 축구팀의 A매치 때 쓰이는 방송사 시그널 송에 그의 기타 연주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소장한 기타의 가격은 60만 원대(야마하 RGX A2)부터 1500만 원대(서·surr)까지 다양하다. 헤드(머리 부분)가 없는 스타인버거 GM-7TA, 독특한 모양으로 인도 시타르 소리를 내주는 전자 시타르까지 생김새와 색상도 천차만별.
기타의 매력으로 ‘아름다운 몸체와 억센 줄을 다루는 짜릿한 손맛’을 드는 그도 처음부터 자기 것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클래식 기타를 전공했던 어머니의 기타로 ‘로망스’를 퉁기던 게 만 네 살 무렵, 중1 때 할머니가 사준 4만 원짜리 국산 ‘소리나’ 기타가 그만의 첫 기타다.
가장 아끼는 기타로 그는 야마하 SG3000 기타들을 꼽았다. “프로 데뷔 후 15년이 걸려 2006년에 세계 악기업계를 대표하는 이 회사의 국제 인도스먼트 아티스트(endorsement artist·업체에서 악기를 무상 지원받는 대신에 무대 등을 통해 계속 해당 브랜드를 노출하는 아티스트)가 됐죠. 감개무량했거든요.”
특이한 기타를 꼽아보라고 하자 ‘킬러 스케어리 안젤라’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을 댄다. 오피스텔 바닥에 늘어놓은 기타들 중 미국의 ‘킬러’사에서 2001년 제공받은 것을 짚으며.
“어머니의 가톨릭 세례명(안젤라)을 넣어 ‘킬러 스케어리 안젤라’라고 이름 붙였어요. 마호가니 보디(몸통)에 에보니 프렛보드(지판), 메이플 넥(목 부분)에 디튜너(음정을 내리는 장치)가 특수 장착돼 순간적으로 음정을 한 음 다운시킬 수 있죠. 제 폭발적인 연주의 비밀이 다 숨어있는 기타예요.”
인터뷰 말미에 뭔가 ‘낚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반전(反轉)을 마주해야 했다. 김세황은 소장 기타 200여 대 중 절반 이상이 실은 기부를 위한 ‘비축분’이라고 털어놨다.
2006년부터 그는 소외 계층을 위한 악기 보급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야마하 등 인도스먼트 계약을 맺은 업체에서 받은 악기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가 매년 조금씩 기부하고 있다. 그는 “큰 기업들이 나눔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 실내악단 이무지치의 60주년 기념 내한 무대에 함께 올라 이탈리아 아트록 밴드 뉴트롤스의 명곡 ‘콘체르토 그로소’를 협주할 예정이다. 공연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17일 대구, 20일 구미, 21일 안양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 20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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