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날로그시계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태엽을 동력으로 돌아가는 기계식 시계와 전기에너지와 수정진동자를 이용하는 전자시계다. 기계식 시계는 13세기에 탄생했으니 8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반면 쿼츠시계로 불리는 대중화한 전자시계는 1969년 탄생했으니 40년밖에 안 됐다. 기계식 시계는 전자시계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고 불편하다. 보통 하루에 5초가량 오차가 발생한다. 반면 전자시계의 오차는 1년에 30초 안팎이다. 전자시계는 배터리만 갈아주면 되지만 기계식 시계는 태엽을 감아 ‘시계밥’을 줘야 한다. 태엽을 자동으로 감아주는 로터를 장착한다 해도 매일 차고 돌아다녀야 서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자시계의 탄생은 곧 기계식 시계의 종말로 이어질 줄 알았다. 전자시계 브랜드인 스와치가 1983년 스위스 기계식 시계를 대표하던 론진과 오메가를 인수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계식 시계는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
기계식 시계에 심취해 잡지사 기자에서 시계 칼럼니스트로 변신한 정희경 씨가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한 린드버그가 고안한 론진의 ‘린드버그 아워 앵글’(위)과 회중시계와 손목시계 겸용이 가능한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의 ‘톤다 트랜스포마’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국에서도 기계식 시계 애호가가 늘고 있다. 독일에서 나오는 기계식 시계 전문지 크로노스 한국어판이 발행되고 기계식 시계 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타임포럼은 회원이 5만 명을 넘으면서 지난해 독립법인이 됐다. 남성 회원이 압도적인 이 타임포럼의 대표는 여자다. 국내 최초의 기계식 시계 입문서로 꼽히는 ‘시계 이야기’(그 책)를 지난해 펴낸 정희경 씨(39)다.
정 씨는 고급 브랜드 상품을 소개하는 잡지사 기자로 패션과 뷰티 상품을 다루다 2007년 시계를 담당하면서 기계식 시계의 진가에 눈을 뜨게 됐다. 미대 출신이지만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세계 최대 시계페어인 바젤월드와 국제시계박람회(SIHH) 취재차 스위스를 찾았다가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시계만 한 것이 없다”는 황홀한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손목시계 하나에 1000∼1200개나 되는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밀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스위스 시계 장인들은 이걸 하나하나 조립해서 시계를 완성합니다. 그래서 햇살이 좋은 아침 일찍 출근해 오후 4, 5시면 퇴근하고 그들의 작업대는 모두 창가에 위치합니다. 그 부품 중 15∼20개는 보석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그만큼 아름다움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죠.”
이후 그는 매년 바젤월드와 SIHH를 찾으면서 유명 브랜드의 신상품 취재에 그치지 않고 론진, 바셰론 콘스탄틴, 카르티에, 브레게, 피아제, 파르미지아니 등이 몰려 있는 ‘스위스 워치밸리’의 공장을 샅샅이 누비기 시작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전문용어였다.
“무브먼트(시곗바늘을 돌아가게 하는 내부 기계장치의 총칭)니 이스케이프먼트 디바이스(톱니바퀴의 회전속도를 고르게 조정하는 장치)니 하는 용어들은 별도의 사전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를 정리한 시계백과사전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딱 3개 국어로만 돼 있고 국내엔 번역조차 안돼 있죠.”
기계식 시계를 좋아한다 해도 수백만 원에서 억대를 넘나드는 시계를 수집할 수는 없는 노릇. 그 대신 정 씨는 관련 해외 저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 시계 관련 책자는 수백 권 있지만 명품 시계는 자신이 손에 차고 다니는 바셰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남성용 시계 딱 한 개뿐이라고 한다.
“손목에 착 달라붙는 게 ‘딱 내 시계’라는 느낌이 와서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주자며 큰 맘 먹고 샀어요. 패션이나 뷰티 상품과 달리 시계는 싫증내지 않고 오래 사용하잖아요. 그래서 ‘나의 분신’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거죠. 그렇게 시계에는 역사가 깃듭니다. 200년 가까운 브랜드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시계에는 농축된 기술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기계식 시계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 역사 위에 다시 자신들의 특별한 역사를 아로새기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요?”
-동아일보 201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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