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가족이 손끝으로 살며시…
사람냄새 주고받는다
《 보드게이머들은 카드와 주사위, 말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냄새, 촉감의 매력을 즐긴다. 나무 주사위가 보드 판에 떨어지는 소리 ‘타닥탁’, 말을 올려놓는 소리 ‘탁’, 카드끼리 스칠 때 나는 소리 ‘사악삭’…. 소리도 제각각이다. 세트상자를 열면 특유의 나무와 종이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2002년 5월 서울 신림동을 시작으로 전국에 보드게임 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3년만 해도 1000여 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PC방에 밀려 지역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
보드게이머이자 수집가인 이형진 씨의 서재엔 450여 개의 보드게임이 사방에 쌓여 있다. 그가 미국과 소련의 냉전게임 ‘트와일라잇 스트러글’을 하며 보드판에 말을 올려놓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브랜드있는 임플란트 월8만원 가능! 33억 로또1등 당첨비법.. 충격 직장인 이형진 씨(33)도 보드게임을 만나기 전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게임 마니아였다. 하지만 2002년 보드게임을 접한 뒤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의 서재엔 총 3000만 원 상당의 보드게임 450여 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보드게임 기록방’이라는 블로그도 운영해 4년 연속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10년 전 보드게임의 ‘맛’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 여자친구와 만났다. 데이트 할 때 연인이 같이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보드게임을 찾게 된 것. 여자친구는 처음에는 보드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하다 담소도 나누고 카드를 주고받으며 손도 몇 번 스치니 ‘정분’이 났다.
아내가 된 그 여자친구와 함께 요즘은 2인용 보드게임을 하면서 블로그에 리뷰를 쓰고 있다. 카드의 색깔과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로스트 시티’, 대륙을 개척하며 경쟁하는 ‘카르카손’ 등 연인이나 부부가 하면 재미있는 게임 리뷰다.
“만난 지 얼마 안됐을 때 ‘로스트 시티’를 하자고 했죠. 둘이서 하는 재미가 쏠쏠했죠. 결국 보드게임 덕분에 결혼하게 된 셈이에요.”
보드게임은 통상 전략게임, 협력게임, 파티게임으로 나뉜다. 2명에서 최대 6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다. 전략게임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가 배경인 ‘트와일라잇 스트러글’, 건축가가 되어 성을 지으며 경쟁하는 ‘대지의 기둥’ 등이 대표적이다. 협력게임은 플레이어 모두 원탁의 기사가 되어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 ‘카멜롯의 그림자’, 파티게임은 카드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딕싯’이 있다. 협력게임과 파티게임은 가족이 모였을 때 함께하기 적합하다.
보드게임을 한번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3∼4시간. 게임규칙 설명과 기본 세팅에만 1시간이 걸린다. “보드게임을 하면 말을 놓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해요. 계속 상대방과 상호 작용할 수밖에 없죠. 상대방이 게임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성격도 알 수 있어요. 끝나고 게임 소품들을 함께 정리하면 정도 쌓이죠.”
보드게임은 보통 한 세트에 카드가 150여 장, 나무로 만든 토큰과 말이 120여 개 들어있다. 말은 일꾼, 소, 돼지, 양 등을 추상화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나뭇조각이다. 그는 손끝으로 만져지는 부드러운 감촉, 그것의 냄새와 소리를 사랑한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게임은 ‘더 세틀러스 오브 카탄’ 15주년 기념 특별판이다. 게임 구성물이 모두 두꺼운 나무와 종이다. 특별판이라 신경을 써서인지 꽤 견고하다. 낡은 상자를 열어보니 나무냄새에 오묘한 향기가 섞였다. 모서리가 많이 닳은 것도 있다.
“게임을 하면 카드와 말을 만지작거리거나 꼭 쥐고 있잖아요. 손에서 나는 사람 냄새? 함께했던 이들의 흔적이죠. 하나하나 손길의 따스함과 추억이 깃들어 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긴다. 게임 장소는 집안 거실이다.
“얼마 전 디아블로3가 한바탕 난리였죠? 가상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잔인한 경쟁을 하는 것보다 거실에 도란도란 앉아 눈빛을 나누면서 교감하는 게임이 진정한 놀이 아닐까요?”
-동아일보 20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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