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중요합니다. 때론 시각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한 권의 중요한 책'이 되고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책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독특한 활자와 예술적인 삽화로 구성된 아름다운 책이 뿜어내는 매력은 서치(書癡)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이 아름다운 '박물관'들을 한데 모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달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문을 연 '한길 책박물관'엔 한길사 김언호(67) 대표가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아름다운 책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책박물관엔 17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초판 복간(復刊)본부터 출판의 황금기인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저작까지 400여권의 희귀본이 전시돼 있다. 두툼한 종이에 정교하게 삽화를 그려넣은 고서부터 판화에 뿌옇게 채색을 넣은 근대서적까지 출판물의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태피스트리(그림을 짜 넣은 직물 ), 벽지 등으로 만들어진 출판물도 전시돼 있다.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출판인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켐스콧 프레스(Kelmescott Press) 컬렉션도 관람할 수 있다. 이 컬렉션은 모리스가 1891년 설립한 출판사 켐스콧 프레스에서 간행한 셰익스피어의 시집,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시인 제프리 초서의 '초서 작품집' 등 66권의 희귀본으로 북디자인 역사상 가장 탁월한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그는 켐스콧 프레스에서 직접 다양한 활자체를 만들고 종이와 잉크를 개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 켐스콧 프레스는 120~500권 정도만 한정판으로 출간했고, 국내에서 이 '예술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한길책박물관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구스타브 도레(1832~ 1883)의 판화 삽화로 구성된 '돈키호테' '라퐁텐 우화집' '신곡' 등은 정확한 소묘와 극적인 구도로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이다. 1797년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윌리엄 터너의 대형 판화집, 후안 미로·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삽화로 구성된 '성경'도 눈길을 끈다. 19세기 유럽의 정치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획전시도 있다. 당시 프랑스는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고 인쇄기술이 발달하며 수백 종의 시사풍자 인쇄물이 간행됐다.
김 대표는 "선구적인 책의 장인들이 만든 '아름다운 책'의 박물관은 오늘날 다양한 분야의 문화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실험공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고서뿐 아니라 근대 우리나라 작가 500여명의 육필원고도 전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20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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