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7-23 14:04
나의 애장품 <6> 기업인 김준목씨의 서양 고서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6905 [626]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김준목(50) 메타디움 에스앤티 대표의 경우가 그랬다. 중견기업 해외무역팀장으로 출장이 잦던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던 것을 좋아하던 그는 로마의 테르미니 역 앞 고서적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한 서적상이 눈에 들어왔다.

“역 건물과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계속 크로키하고 있더라고요. 같은 장면을 그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나는 시간을 그리는 화가’라고 하더라고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그림을 두 장 샀더니 자기 집으로 초대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로마 문화계의 거물이었어요.”

작은 성 같은 그의 집 거대한 창고에는 수십만 권의 옛날 책들로 가득했다. 그는 로마시대 인물인 키케로의 글이 들어 있는 고서를 선물로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그냥 책 한 권을 주는 게 아니라 이 속에 든 한 영혼을 선물하는 것이야.”

그때부터 유럽에 갈 때마다 그를 만났고, 틈날 때마다 고서 수집 현장도 따라다니며 안목을 높였다.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스티커 사진방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비교적 여유롭게 책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간 모은 유럽 고서들이 3000여 권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앨버투스 황제가 등극할 때 바쳐진 1573년판 성경책은 당시 2000만원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경매에서 1억2000만원을 호가한다고. 그는 왜 서양의 옛날 책에 꽂혔을까.


“디지털 시대에 웬 고서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저는 서양 문화의 소스를 갖고 싶었어요. 생각의 뿌리를 알고 그 소스를 섞으면 새로운 창조물이 나오거든요. 특히 건축이나 미술·음악 등 그림이 있는 예술 분야 책을 주로 수집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을 집대성한 비뇰라의 건축집은 건축학도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죠. 이런 정보를 학생, 전문가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금 쓸 만한 책들을 CD로 만들고 있어요.”

지난해 5월 5일에는 파주 헤이리에 ‘네버랜드 어린이 책박물관’을 열었다. 책을 통해 꿈을 찾아내고 책과 더불어 인생을 살아가도록 훈련시켜 주는 공간이다. 앞으로 고서 박물관도 만들 생각이다. 책 속에 길이 있기에.


-중앙선데이 2012.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