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19 14:49
대통령 일거수일투족 기록·보존… 사생활 관련은 30년 비공개
盧-金회담록 계기로 본 국가기록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에서 나눈 회담록 공개 여부를 놓고 대선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나눈 회담록은 중요한 국가기록물이다. 따라서 대통령 임기 이후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겨졌어야 한다. 그러나 여권 고위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지시에 의해 청와대 보관용의 경우 2007년 말~2008년 초에 파쇄돼 폐기됐다고 주장했다.(문화일보 10월17일자 1면 참조)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논란을 일으키며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대통령기록물을 비롯, 국가의 주요 기록물들을 연구·보존하고 국민에게 기록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기록원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극비 외교 문서 등 주요 기록물에 대한 관리 실태,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과의 회담록 공개 가능성 등을 짚어 봤다.


1. 국가기록원이란

국가기록원은 국가기록 관리 정책과 제도를 총괄하고 대통령기록물을 비롯해 중앙 부처 주요 기록물을 수집·보존해 국민들에게 기록물 열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국가기록원은 1969년 정부기록보존소로 출발, 2004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국가 전반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문서와 기록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대전 정부청사 내부의 국가기록정보센터를 비롯해 전국 4개 지역에 국가기록물을 보관하고 있으며 대통령기록관은 나라기록관과 함께 경기 성남시에 위치하고 있다.

2. 어떤 기록물이 보존돼 있나

국가기록원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총독부 기록물 등 역사 기록물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 주요 기록물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행정 문서뿐만 아니라 사진·영상 등 시청각 기록물, 행정박물(타국에서 대통령이 받은 선물)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 중앙 부처의 주요 기록물 가운데 30년 이상 보존가치가 있는 것들은 주요 기록물로 지정하고 이를 이관해 보존·관리한다.

3. 이색 기록물들

국가기록원은 정부 문서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높은 해외·민간 소재 기록물도 수집·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6·25전쟁 관련 기록물의 경우 해외 기록물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정리하는 작업을 거친 후 곧바로 공개하고 있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기록물을 민간에서 기증받기도 한다. 민간에서 받는 기록물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거나 대표성을 지닌 사진물 등이 대표적이다.

가령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부산지역의 각종 모습을 담은 최민식 작가의 사진은 부산 지역의 민간 생활사를 담은 대표적인 기록물로 인정이 돼 국가기록원에서 보유 중이다. 옛날 사진이라고 전부 기록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 등을 평가받은 것들에 대해 국가기록원이 선별적으로 이관받아 보존·관리한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과정에서 받은 선물, 즉 행정박물도 국가기록원이 보존·관리하는 이색 기록물이다. 대통령의 선물은 받는 즉시 바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중앙아프리카 방문 당시 받은 조각상,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베트남 방문 중 베트남 수상으로부터 받은 거북이 박제 등은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사할린 강제 징용과 관련한 명부의 경우 국가기록원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록물이다.

4. 기록물 관리는 어떻게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기록물은 소독과 정리 절차 등을 거쳐 항온·항습 시설이 갖춰져 있는 첨단 서고에 보존·관리된다. 서고는 기록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화재방지 시스템을 비롯해 철저한 출입통제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기록물은 디지털화하는 한편, 훼손된 기록물의 경우 복원을 통해 후대에 안전하게 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기록원의 서고는 넓이가 아닌 문서가 꽂힌 길이로 규모를 따진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으로, 기록물을 책꽂이에 꽂아 놓은 것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국가기록원의 기록물 규모는 347㎞에 달하며 이는 서울에서 경남 밀양시까지 거리 정도에 해당된다.

5. 열람 방법은

국가기록원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정보공개법’에 따라 기록물 열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기록물 열람서비스는 국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을 통해 제공되고 있으며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6. 대통령 관련 기록 대상·범위

대통령 활동은 모두 역사기록으로 남긴다. ‘대통령기록물’은 법에 따라 국가기록원 조직 내 대통령기록관에 영구보존토록 돼 있다. 대통령이 1년 평균 200여 개의 각종 행사에 참석해 행한 축사 등 공개연설뿐 아니라 외국 정상들과의 단독·확대 정상회담에서의 발언록, 회의 내용과 결과가 담긴 회담록 등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록도 많다.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비롯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비상경제대책회의, 녹색성장위원회를 포함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 등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물론 참석자들의 보고, 의견내용까지 기록에 담긴다. 대통령이 언제, 어디를 갔는지 세세한 동선도 기록된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기록 대상이다.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활동에 들어가기 이전, 대선에서 당선인으로 확정된 뒤 구성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 내용까지도 대통령기록물에 포함된다.

7. 대통령기록물 공개 절차는

기록물은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며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법률 제17조를 보면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가 있다. 국방이나 안보와 관련되거나 기타 주요 기록에 대해 대통령이 비공개 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15년간 지정이 유지된다.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은 30년까지 지정이 유지되며, 이 기간이 지나면 일단 재분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정기간이 지난 기록도 국가안보 등에 영향을 미칠 경우 계속 비공개를 유지할 수 있다.

기록물의 보존은 대통령기록관에서 하지만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기록 지정 기간 동안에는 목록조차 확인할 수 없다. 대통령의 퇴임과 동시에 청와대로부터 기록을 이관받는다.

8. 대통령 회담은 누가 기록하나

대통령의 모든 발언은 현장에서 비서실 또는 대통령실 소속 행정관이 직접 기록한다. 현 정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거나 외부활동을 가는 곳마다 김윤경·이진영 행정관 2명이 번갈아 수행하면서 기록을 맡고 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참모로 일하면서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대통령의 발음이나 용어도 빠뜨리지 않고 포착해 기록에 만전을 기한다. 대통령 연설문은 김영수 연설기록비서관이 책임지고 초안을 작성한 뒤 이 대통령이 직접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실제 행사장에서 행한 연설을 다시 기록해 최종본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별도로 언론활동 지원을 위해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에는 현나리·김선영 행정요원 2명이 대통령 연설을 현장에서 속기로 기록한 뒤 ‘e춘추관’을 통해 언론에 제공한다.

또 역대 정부마다 임기 말에는 태스크포스가 구성돼 재임 기간의 백서 발간 작업에 들어간다. 대통령연설문집도 5∼6권 정도 책자로 별도 발간된다. 문서관리 체계로 노무현 정부는 ‘이지원시스템’을 운영했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보완, 개편한 ‘위민’을 운영 중이다. 대통령을 대신해 외국에 파견하는 다양한 특사나 밀사의 경우 청와대에서 기록관이 별도 파견되지 않고 성격에 따라 정부 부처의 지원을 받거나 특사의 참모들이 기록 업무를 담당한다. 특사는 귀국한 뒤 보통 대통령을 만나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 문서 역시 법에 따라 관리한다.

9. 盧-김정일 회담록 공개될까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담록 공개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으나 공개 전망은 불투명하다.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과 관련,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열람이나 회담록 공개가 필요하다”는 새누리당과 “가짜 대화록에 기반한 신북풍공작을 중단하라”는 민주통합당(민주당)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회담록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1급 비밀로 분류돼 있어 이를 열람하거나 공개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이 필요하다.

현재 의석 분포대로라면 국회 찬성 의결에 따른 회담록 공개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통한 대화록 공개를 추진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결단을 내려 현재 국가정보원이 보관하고 있는 회담록 원본을 여야가 함께 열람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문 후보 측은 이에 대해 “박근혜 대선 후보와 새누리당은 신종 북풍공작을 중단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면서도 박 후보의 책임 약속을 전제로 한 ‘조건부 공개’의 뜻을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10. 외교문서 공개는 어떻게

정부가 1996년 제정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에 앞서 외교통상부는 이미 1993년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을 제정, 이를 바탕으로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규칙에 따르면 외교부는 매년 3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에 한해 관련 실·국 1차 검토→예비심사단 심사→외교문서 공개심의회 결정 등 3단계 심사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공개심의회 위원장은 외교부 1차관이며, 위원은 차관보·의전장·다자외교조정관·기획조정실장·통상교섭조정관 등 차관보급 이상으로 구성된다. 3분의 2 이상 출석에 출석위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공개하는데, 비공개로 결정된 문서라 해도 5년이 지나면 공개 여부를 재심의한다. 비공개는 정보공개법 제9조 2항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한하지만, 최근에는 각종 정상회담 관련 문서를 비롯해 상당수 외교문서가 공개되는 게 추세다. 외교부 관계자는 “196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2005년 전부 공개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2012.10.19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0190103324317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