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였던 1964년 9월,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폐간됐다가 28년 만에 다시 나온 ‘신동아’ 복간호를 사면서 기념으로 잡지를 모으기 시작했죠. 당시엔 두툼한 신동아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지성인의 상징이었어요.”
잡지 수집가 김효영 씨(67)는 1910년대부터 한 세기 동안 국내에서 발행된 잡지 7000여 권을 수집해 왔다. 이 중 창간호만 6500권이 넘는다. 신문 창간호도 600여 부 모아두었다. 그가 ‘잡지의 날’(11월 1일)을 맞아 1945년 12월 창간된 ‘인민(人民)’, 1946년 1월과 3월 각각 창간호를 낸 ‘우리 문학(文學)’과 ‘적성(赤星)’ 등 해방공간에서 발행된 좌파 성향의 잡지 창간호 3권을 31일 본보에 공개했다. 그는 “이 잡지의 실물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적성’에는 남조선노동당 당수였던 박헌영(1900∼1955)이 ‘송구영신에 대하여’라는 글을 기고했다. ‘우리 문학’에는 이기영(1895∼1984), 박세영(1902∼1989), 안동수(?∼?) 등 광복 후 월북한 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했다. ‘인민’에는 ‘혁명극장 동무들’이라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적성’ 창간호 첫 장에는 ‘불온간행물’이라는 붉은색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다.
김 씨는 “광복 이후 잡지가 우후죽순으로 창간됐다”며 “일제강점기에 억압받던 각종 단체들이 광복이 되자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 등으로 창간호가 곧 마지막 호인 경우가 많았다. “‘적성’과 ‘인민’, ‘우리 문학’도 창간호 이후 후속호를 내지 못한 것 같아요. 1950년 이후에는 6·25전쟁으로 잡지 종수가 확 줄었는데, 수집가로서 보면 이때 발행된 잡지가 가장 귀하지요. 권당 100만 원이 넘어가기도 해요. 이후 잡지는 부흥과 쇠퇴를 거듭합니다.”
1970년대에는 ‘새마을’ 등 정부 주도의 홍보 잡지가 많이 발간되면서 부흥기를 맞았지만 1980년대 언론통폐합으로 ‘뿌리깊은 나무’처럼 내용이 충실한 잡지들이 폐간됐다. 1990년대는 ‘엘르’ ‘마리끌레르’ 등 외국 잡지의 한국어판이 여럿 창간되면서 부흥기에 접어들었다가 2000년 이후 인터넷의 영향으로 잡지가 다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설명이다.
김 씨가 경기 성남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며 부지런히 모은 잡지들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를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다. 신동아만 420권 넘게 모았는데, 창간호는 어떻게 해도 구할 수 없어 영인본(影印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잡지는 한 시대 한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상황 등을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지만 사람들이 정기간행물이라는 이유로 모아놓지 않고 쉽게 버린다”며 안타까워했다. 발행기관마저도 창간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육군이 발행하는 ‘육군’ 창간호를 육군본부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육군에 빌려준 적도 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이 소장한 잡지들이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연구자들이 잡지를 열람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12.11.1
http://news.donga.com/3/all/20121101/50537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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