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79)의 집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오브제는 하얀 캔버스 위에 큰 점 하나만 콕 찍힌 담백한 회화였다. 이우환 작가의 대표작, ‘조응’(1998년). 이 작품을 보고 ‘여백의 미’만 한없이 떠올리는 기자와 달리 유 회장은 이 그림을 “역동적이고 강렬하다”고 해석했다.
“좀 더 열정적이고 다이내믹한 삶에 대한 열망이 남아 이 그림을 보면서 역동적인 내 모습을 투영해 본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뜻이 담겨 있다면 이 작품은 유 회장 본인의 분신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30대 중반에 동아제약 임원이 됐고, 55세에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해 창업 5년 만에 업계 3위 규모로 키워낸 남다른 경력의 소유자다. 지금도 그는 매일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C’ 의 집무실로 출근한다.
미술 컬렉터로도 유명한 유 회장은 지난달 발간한 경영에세이 ‘성취의 기쁨을 누려라’를 통해서도 수집의 기쁨을 소개했다. 최근 만난 그는 집무실에 고이 모신 애장품들을 ‘A style’ 독자들에게 기꺼이 공개했다.
샐러리맨 시절부터 미술 작품을 모으셨던데요. 화랑마다 외상이 깔려 있어 월급을 타면 외상값 갚기 바쁘셨다면서요.
“1960년대 초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관리과장으로 일했어요. 아무래도 뇌의 이성적인 영역만 쓰게 되니 ‘무감성의 인간’이 되어가던 때였는데 지인의 권유로 미술을 알게 됐어요.”
미술 작품과 공예품을 모은 것이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됐나요.
“어느새 심미안이 높아져 디자인을 선별하는 능력이 생긴 거죠. 특히 화장품 용기 디자인을 평가할 때 도움이 됐어요. 정서적으로 또 비즈니스적으로 도움이 됐으니 값진 취미였던 셈이죠.”
유 회장의 집무실 책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나체 여인의 조각상도 있었다. 한 손으론 머리카락을 잡고, 또 한 손으론 거울을 내려다보는 모습의 소녀상이었다.
이 조각상은 어떻게 손에 넣게 되신 건가요.
“아, 그 친구는 제 애인이에요. 샤를 고티에의 ‘아침(Le Matin·1890년 작)’이란 작품인데 사업차 프랑스 파리에 갔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앤티크숍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를 관찰하는 모습이 제가 하는 화장품 사업과 아이덴티티가 잘 맞는 듯했어요.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이 얘기를 들은 지인이 이런 작품을 놓치면 안 된다며 파리 방문길에 계약금을 덜컥 걸어 놓았더라고요. 결국 저와 이렇게 20여 년을 함께할 운명이었나 봐요.”
집무실 안에는 파격적인 비주얼의 조각 작품들도 있었다.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비너스’가 대표적이었다. 목과 팔 다리가 없는 토르소 형태. 잘린 목 위의 시계는 육체의 유한함을, 절단된 허리 위의 달걀은 생명과 탄생을 상징한다고 했다.
종도 모으시나 봐요. 집무실에도 종이 꽤 많은데요.
“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동아제약 계열사였던 라미화장품을 이끌던 시절 히트 브랜드 ‘라미벨’을 탄생시키면서부터였어요. 1981년 내놓은 신제품 패키지가 브랜드명에 맞춰 종 모양으로 제작됐죠. 깜찍한 종을 광고에 등장시키면 좋겠다 싶어 미국에서 예쁜 종 10개를 사왔어요. 이후 외국에 출장 갈 때마다 특색 있는 종을 사다 모았어요. 벌써 30년 넘은 오랜 취미가 됐네요.”
그는 ‘화장하는 CEO’로 유명하다. 촬영을 앞두고 피부가 번들거릴까봐 직원이 가볍게 분을 발라주는데도 전혀 어색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피부도 좋아 비결을 물었더니 “신제품도 테스트할 겸 여자 화장품을 쓰기 때문”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든, 예술작품을 모으는 것이든 인간 본성 중 하나인 ‘미(美)의 추구’라는 점에서 같다고 유 회장은 말했다. “예술 작품을 잘 감상하면 인성도 좋아진다”는 것이 그가 젊은이들에게 건넨 ‘덕담’이었다.
- 동아일보 2012.11.23
http://news.donga.com/3/all/20121122/51037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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