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1-26 08:42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려야 할 ‘여유당전서’
올해는 다산 탄생 250주년이다. 마침내 온 세계의 학술·문화계에서 그를 알아주어 유네스코는 2012년 기념할 인물로 다산을 선정했다. 한국의 정약용은 세계의 정약용으로 예우를 받게 되었고 이런 때를 맞아 11월에는 그의 전 저작물을 총망라하여 제대로 교정·교열하고 표점(띄어쓰기 표시)까지 찍은 정본(定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정약용 문집)가 출간됐다. 우리 민족의 자랑이요, 이 나라 학술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이번 간행은 다산학 연구의 재도약을 가능케 할 좋은 발판을 제공했다고 평가해도 좋겠다.

1930년대 중반, 식민지 아래서 신음하던 선학(先學)들인 위당 정인보, 민세 안재홍 등은 다산 서세(逝世·별세의 높임말) 100주년을 맞아 ‘여유당전서’ 간행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다산 선생의 학문적 위상과 업적을 세상에 알리며 저서 간행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 결과 1938년 총 154권을 76책으로 묶어 활자인쇄본 간행이 완료됐다. 본디 저자의 분류로는 500권이 넘는 분량이었으나 활자로 인쇄하면서 권수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76책은 1962년에야 축쇄영인본이 나왔고, 1970년에는 경인문화사에서 6책으로 축쇄영인하고, 전서에서 빠진 보유편을 5책으로 영인 간행했다. 1985년에는 여강출판사에서 20책으로 76책의 전서를 다시 영인하여 간행하였고 최근에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국문집총간의 하나로 6책으로 다른 책과 대조하여 바르게 만든 축쇄영인본을 간행했다.

100년이 지나서야 빛을 본 다산

이렇듯 여러 차례 간행은 되었지만 글을 쓰는 과정이나 인쇄 과정에서 빠진 글자는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고, 저자의 저술이 아닌 글들이 포함됐고, 잘못 들어간 글이나 빠진 글도 많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다산 자신의 저술에 가장 가까운 정본 사업에 착수해 다산학술문화재단의 10년간 공로로 이번에 간행되기 이르렀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연구자들에게는 새로운 복음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으로 경하할 일이요 세계 학술사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간행을 계기로 국민적 힘을 모아 유네스코에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라를 잃고 신음하던 조선 민족은 다산 서세 100주기이던 1936년을 전후하여 다산의 저술을 읽어보고서야 그 위대함과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다산이 뜻을 펴지 못하고, 그의 학문과 정책이 국가시책에 반영되지 못해 망국의 서러움까지 당했음을 자각하면서 다산 저술의 진가를 뼈아프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산의 학문 종지(宗旨)는 경학(經學)에 있고 그런 종지에 따라 나라를 개혁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던 경세학(經世學)인 일표이서(一表二書·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통해 부국강병의 나라를 세우자던 다산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 국민은 없었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갈구하던 민족주의 학자들은 다산의 학문을 통해 조국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뜻을 품기도 했다. 위당 정인보는 1934년 9월 10∼15일 6회에 걸쳐 정치학자·경제학자·법학자이던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1935년 8월에는 신동아에 저서 간행의 간절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1936년 6월에는 동아일보에 ‘다산 선생의 일생’이라는 장문의 글을 발표하여 다산학의 개요를 설명했다. 서세 100주기를 기념하는 명문의 글이 바로 그 기사였다.

정인보는 ‘여유당전서’를 통독하고 그 책을 교정하고 교열한 능력으로 다산의 일생을 서술했다. 그는 “선생 한 사람에 대한 고구(考究)는 곧 조선역사의 연구요 근세 조선사상의 연구”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역사나 조선정신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및 조선의 성쇠존망에 대한 연구는 다산의 저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다소 극단적인 선언을 했었다.

7개 분야 500권으로 구성

그는 500권이 넘는 저서를 7개 분야로 분류하여 전서의 편집을 완료했다. 1집은 25권 12책으로 시(詩)와 문(文)의 분야다. 2집은 48권 24책으로 경학 즉 철학분야다. 3집은 24권 12책 예집(禮集)으로 상례(喪禮)·제례(祭禮)의 예학분야다. 4집은 4권 2책으로 악집(樂集)이니 음악에 관한 분야다. 5집은 정법집으로 39권 19책으로 이른바 ‘일표이서’라는 경세학 분야다. 제6집은 8권 4책으로 지리학 분야다. 마지막 7집은 6권 3책의 의약집이니 의약·약학에 관한 책으로 ‘마과회통’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의 정신세계에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평등주의, 백성만이 궁극적으로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본정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한없이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애민정신, 공직자의 청렴정신이 없으면 나라는 망한다는 청렴입국의 정신이 가득 담겨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무한한 지혜를 제공해주는 지극한 보배가 바로 ‘여유당전서’이다.

- 동아일보 2012.11.24
news.donga.com/3/all/20121123/51069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