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2-01 12:50
“김정호는 왜 독도를 대동여지도에 그리지 않았을까, 아시나요?” / 양재룡 호야지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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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wnews.co.kr/nview.asp?s=601&aid=212112900100 [422] |
[week+]“김정호는 왜 독도를 대동여지도에 그리지 않았을까, 아시나요?”
연고 전혀 없는 영월에 전 재산 털어 박물관 지은 양재룡 호야지리박물관장
`땅은 스스로의 이치로 걸어 나간다. 걷고 걸어서 기어이 지도가 된다. 높고 낮은 등고선이 씨줄 날줄로 엮어 나가며 세상의 좌표가 된다.'
양재룡(65) 영월 호야지리박물관장은 36년간 교단에서 세상의 좌표가 되는 지리를 가르쳤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거 봐라. 한국이 자랑하는 대동여지도에도 독도가 없다'며 자기네 땅이라고 우깁니다. 김정호가 독도가 있는지 몰랐을까요.”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양 관장이 제자에게 말하듯 툭 던지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당황한다. “대동여지도는 독도가 없기에 정확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1834년(순조 34)에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를 27년 후 증보 수정한 대축척 지도입니다. 우리나라 남북을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죠. 독도를 그리게 되면 그보다 큰 섬 2,000여개 이상을 그려야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릴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가 `박물관 고을' 영월군의 수주면 무릉리에 국내 유일의 제1종 지리전문테마 박물관을 세운 것은 2007년 5월이다. 교사로 서른여섯 해 숱하게 넘기고 넘겨온 지리책을 `이제는 땅 위에 풀어놓자'는 생각에 건립하게 됐다.
충남 논산 출신으로 퇴직후 연고가 전혀없는 영월에 전 재산을 털어 무작정 박물관을 열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일을 저지를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적당히 안주하는 삶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리는 교과서에만 있어요. 세상 곳곳이 지리고 역사의 흔적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요. 왜 내가 지리박물관을 영월에 지었을까요. 대관령을 넘으면서 태백산맥을 못 보는 아이들, 영월까지 와서 래프팅만 하고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을 모르는 아이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람객들은 그의 물음에 또 답변이 궁색해진다.
“영월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중첩하고, 백운산·옥석산·백덕산 등이 솟아 있는 등 지질이 복잡합니다. 중앙부는 한강과 그 지류인 평창강·주천강 등이 합류하고 곳곳에 석회암층과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해 있습니다. 광물자원의 표본실이며 우리나라 지형답사의 1번지죠.”
그의 박물관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맑은 물이 샘솟아 흐르는 무릉도원인 무릉리의 중간지점에 터를 잡고 있다. 현재 안산 성포고 교장으로 근무하는 부인 경혜영씨가 찾은 장소다. 주변에 요선정, 법흥사계곡 등 수려한 자연경관이 일품이다.
박물관에는 한반도가 섬으로 표현된 1600년대 고지도, 동해가 한국의 바다로 표시된 1700년대 지도, 독도가 분명하게 한국의 땅임을 증명하는 실증적 고지도와 50여종의 각종 지구본, 지질, 지형, 암석과 화석모형 표본 등 지리관련 희귀자료 7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지구, 지형모습, 세계 각 지방과 내가 살고 있는 집 등을 위성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다.
2009년 준공한 지오토피아관에는 영월의 지형, 어린이 지리책 만들기, 지리영상체험, 지도퍼즐 놀이, 중고생 지리체험교실 등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영월지리 트레킹은 한 해 100여개팀 4,000여명이 다녀가는 인기프로그램이다.
요선암에서 선암마을로, 선돌에서 청령포로 4시간 가까이 돌며 돌리네와 라피에, 카르스트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체험할 수 있다.
그는 동해와 독도 기획전, 광개토대왕 비문 실물탁본 특별전 등 다채로운 전시회도 연중 개최하고 있다.
박물관은 풍부한 자료와 그의 열정적인 입담이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연간 1만5,000여명이 찾고 있다.
그의 독도 설명이 다시 이어진다.
“일본이 독도 강탈을 위해 치밀하게 자료를 모으고 조직적으로 영유권 확보 음모를 노골화하는데 반해 우리는 고지도상에 나타난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라요. 대동여지도가 독도를 안 그려 훌륭한 지도임을 해석하지 못하면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고 있으니 한심하죠. 우리가 독도에 대해 알고 있는 지적 수준은 다분히 감정에 치우쳐 있어요.”
양 관장은 책도 여러권 펴냈다. `우리 땅 독도 동해바다 한국해', `호야선생님의 지리세상', `우리 땅 독도의 실증지도 모음집', `영월지리여행'등이다.
그의 저서 `우리 땅 독도 동해바다 한국해'에는 동해와 독도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그는 “박물관을 찾은 일본 관광객도 이 책을 본 후에는 독도는 한국땅입니다라고 수긍하며 간다”며 웃는다.
서양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가 처음으로 알려진 때는 하멜표류기가 나온 1668년 이후다. 서양인 하멜이 반도라는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서양지도에 한국은 섬으로 표시됐다. 이때까지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바다, 즉 동방해(Mer Orientale) 속에 있는 섬이었다. 하지만, 하멜표류기로 한국이 섬이 아닌 반도로 밝혀지면서 한국 동쪽과 일본 서쪽 사이에 작은 바다가 생겼다. 이 새로운 바다 이름이 바로 한국해(Mer de Coree)다.
이를 시작으로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세계 모든 지도는 한반도 동쪽 바다를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했다. 당시 일본해(Sea of Japan)는 동해(한국해)가 아닌 일본 혼슈 남쪽 바다였다.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1752년 발랭의 일본지도에는 이 같은 한국해와 일본해의 위치가 명확하다.
“한국해가 19세기 이후 서양의 근대지도에서 일본해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이 한국보다 서양세계에 더 잘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일본해는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의 세계 바다 이름 결정으로 현대 세계 각국 지도에 한국해 대신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882년까지도 자국 지도(대일본조선팔도지나삼국전도)에 한국해를 일본해가 아닌 조선해로 썼죠. 조선해는 우리나라가 조선시대 표기하던 한국해 이름입니다. 조선해는 대한제국시대에는 대한해로, 대한민국시대에는 동해로 각각 통용됐어요.”
양 관장은 이런 일본이 러일전쟁(1904∼1905년) 이후 독도 영유권은 물론 동해 표기까지 넘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1904년까지만 해도 독도와 울릉도 위치를 잘못 표기할 정도였던 일본은 동해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으로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마네현 고시를 서둘러 발표하는 등 침탈 야욕을 노골화했죠. 최근에는 일본해 표기 논란을 일으키면서 대한해협까지 일본해협(쓰시마해협)으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 차단하려면 감정적 대응보다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객관화하는 등 논리적으로 당당해져야 합니다.”
그의 열변은 굳건하다. 일본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독도 이야기에는 눈빛이 달라진다.
양 관장은 일본이 19세기 후반 제작한 군사용 지도와 `독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한 문부성 검정 교재를 찾아내 국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그가 수집한 1895년 일본이 그린 군사용 정밀지도 실측 일청한군용정도(實測 日淸韓軍用精圖)와 1897년 일본 문부성이 검정한 교재 일본지지(日本地誌)는 지도 속에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국경선이 그려진 일청한군용정도에는 송도(松島·울릉도)와 죽도(竹島·독도)가 한국 영토로 명확히 표기돼 있다.
지리교재인 일본지지 안에 수록된 지도에는 일본열도와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이 붉은색으로 표시돼 있지만 독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영토는 흰색으로 표시돼 있다.
“전 세계에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한 허구성을 밝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지도입니다. 제가 수집한 자료를 포함, 많은 지도가 독도가 한국 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세경대에서 독도학 특강을 진행했다. `지도가 밝혀주는 독도의 진실'의 주제로 한국교원대 초청강연을 비롯해 경기도 중등지리교과교육 초청강연, 전남, 충남, 경기교육연수원, 각급 학교, 군부대 등에서 30여 차례의 특강을 가진 바 있다.
대한지리학회, 독도저널 등에도 논문을 발표해 그동안 학계에서 밝히지 못한 고지도를 통한 한국령 독도의 진실을 알렸다.
그는 앞으로 독도의 역사자료 분석과 독도의 가치 보존 방안 등을 집중 연구해 독도학의 기본적인 골격을 제시할 각오다.
“지도는 단순히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닌 사회적 사건의 기록이자 역사의 증언입니다. 지도를 보면 당대의 역사적 사실이나 사회적, 문화적 현상, 혹은 우리가 몰랐던 숨은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양 관장의 지도 사랑은 독도사랑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깊은 삶의 경험과 철학이 묻어난 확고한 그의 믿음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고지도 같았다.
그의 달변에, 그리고 열변에 김정호가 독도를 대동여지도에 왜 그려넣지 않았는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확실히 알고 떠났다.
영월=김광희기자 kwh635@kwnews.co.kr
- 강원일보 20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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