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9-06 17:36
[가천박물관 '창간호'를 말하다] ③창간호의 시대정신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0737 [409]

(사진1)
(사진2) <기호흥학회월보>1908년 8월25일 창간, 기호흥학회
(사진3) <신흥청년>1924년 11월7일 창간, 신흥청년사
(사진4) <현대평론>1927년 1월20일 창간, 현대평론사
(사진5) <조선체육계사>1932년 7월1일 창간, 조선체육계사



민족의 수난·영광·사상 오롯이…시대를 투영하다

일제강점기, 자주·애국·독립사상이 창간 배경
해방 후 민주·산업화 목표 전문잡지 탄생
탄압·검열·경영 등 수난…대부분 수명 짧아



1908년 한국 근대식 잡지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소년>이 나온 이후 수많은 잡지가 발간되고 사라졌다.

잡지는 시대를 투영하고 시대는 잡지를 반영해왔다. 특히 우리나라 초창기 잡지들은 일본 강점기와 민주화 시대를 관통하며 그 시대에 맞는 이데올로기와 정치, 문화, 역사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까지는 국가의 자주와 애국, 독립을 주창하는 민족주의 사상이 잡지의 창간 배경이 됐으며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궁극적 목표로 한 계몽과 경제 부흥 등이 전문 잡지를 탄생하게 했다.

이렇게 민족의 수난과 영광, 사상의 결정체였던 한국 잡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탄압과 검열도 예민한 문제였다.

여기에 발행처들의 경영난까지 겹쳐 우리나라 잡지의 역사를 훑어보면 외국 사례와 비교해서도 대부분 수명이 짧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가천박물관이 소장한 2만여권의 창간호를 주요 시대별로 묶어 소개한다. 일부 잡지는 창간 의도를 알 수 있는 ‘창간사’를 원문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개화기


<기호흥학회월보>1908년 8월25일 창간, 기호흥학회


민족자강을 위한 교육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애국계몽단체 기호흥학회의 기관지다. 발행인은 김규동, 편집인은 이해조가 맡았으며 집필진으로 김가진, 신채호, 변영만 등이 참여했다. 교육을 독립의 기초로 삼고자 했고 신지식을 소개하는 학해집성(學海集成) 지면을 두고 회원들의 교양을 진작하려 했다. 1909년 7월 25일 통권 12호를 끝으로 폐간된다.

“이에 우리들 동인(同人)이 뉘우치는 마음에서 서로 상의하고 협동하여 이 한 모임을 만들어 ‘기호흥학회’라 하니, 오로지 정신이 학문을 진흥하는 한가지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학교를 건설하여 준예(俊乂)를 양성하고 각지에 파견하여 전국의 청년을 교육하려 함이다.”


일제강점기


<신흥청년>1924년 11월7일 창간, 신흥청년사


신흥청년사는 사회주의 청년운동단체인 신흥청년동맹에서 설립한 잡지사다. 창간사는 김찬(金燦)이 썼으며, 집필진으로 박헌영, 조봉암, 임원근, 김단야 등이 참여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러시아혁명, 사회주의, 소비에트 헌법 등을 소개하여 무산계급 청년의 단결과 사상적 무장을 도모하였다. 일본 도쿄에서 발행되어 조선으로 넘어왔으나 일제에 의해 압수되어 발매금지됐다.

“우리는 新興한 階級의 靑年인 故로 在來의 모든 것에 對立한 地位에 잇다. 우리의게는 우리의 先輩 _ 우리 運動 -階級 戰爭-을 爲하야 犧牲된 ㅼㅗ犧牲하는 그네들의 指導下에서 地位와 利害를 갓치하는 우리 無_靑年기리 切磋琢磨하여 硏究하여야 한다。이런 意味에서 우리는 雜誌 新興靑年을 發刊하는 바이다. 이 __한 努力이 우리 運動全_에 萬分一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幸甚인가 한다.”


<현대평론>1927년 1월20일 창간, 현대평론사


평론 중심의 종합잡지로 하준석이 발행하고 홍성하, 이관용, 안재홍, 백남운, 이긍종, 홍기문, 이현경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 대한 평론과 문예작품을 실었으며, 창간호에서는 ‘부인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성향을 드러내 일제의 탄압을 받았으며 1928년 1월 통권 11호를 끝으로 폐간한다.

“朝鮮民族의 問題는 朝鮮民族으로셔 朝鮮民族의要求와 現代朝鮮의事情을 基礎로하여야 永久且完全한 解決을으들것이라確信한다. (중략) 朝鮮民衆의要求를基礎로한 朝鮮實際事情에 適用될만하고 生命잇는 發展可能性을가진主義가아니면 民衆이應할리도업스려니와 그主義는 民衆의生活의 表面에셔것돌고잇는 죽은_念에不過할것이다. 勿論 外來的觀念이라도 民衆의要求와合致한다면 우리는 조금도 셔슴치안코 이것을 吸收할것이며 만일 眞正히民衆의要求를基礎로한主義라면 그것이 「_ㅔ닌」主義와 合致되거나 或, 「워슁톤」主義에 共鳴하거나 우리는조금도躊躇하지안코握手할것이다.”


<조선체육계사>1932년 7월1일 창간, 조선체육계사


1920년 조선체육회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체육인 이원용이 만든 체육잡지. 이경석(유도), 서상천(역도), 김태식(수영·육상) 등 체육인들이 ‘억센 조선의 건설’을 목표로 조선에 맞는 체육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체육 각 종목에 대한 논설과 더불어 당시 실제로 벌어졌던 운동경기를 취재한 글이 실렸다.

“억센이는 살고 억세지 못한 민족은 죽어간다”


해방기


<백민白民>1945년 12월1일 창간, 백민문화사


백의민족을 뜻하는 ‘백민’은 해방의 감격을 표현했다. 창간특집으로 ‘해방후 지도자의 사자후’ 코너에서 이승만, 여운형, 박헌영, 안재홍 등 당시 유력 정치 지도자들의 국가수립과 운영방향에 대한 연설문을 실었다. 1950년 6월 통권 23호로 종간됐다.


<진학>1946년 1월27일 창간, 학생사


대학교수와 유명인사들이 발간한 중등학생 잡지다. 신교육제도, 대학입시시험, 명문 대학에 대한 소개에 비중을 뒀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교육을 통해 용감한 자를 길러내는 것.”


<해외경제사정>1949년 1월1일 창간, 조선은행 조사부


조선은행 부총재 구용서를 포함하여 임직원 25명이 집필을 담당했다. 기존에 조선은행에서 발행하고 있던 월보에서 해외경제 분야를 따로 엮어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인식 아래 잡지로 만든 것이다. 창간호에서 전후 각국의 통화개혁을 특집으로 실었으며 그밖에 동서양 각국의 경제정세를 다뤘다.


6·25전쟁기


<호기虎技>1951년 5월20일, 육군병기학교 제5기 병기사관후보생 호기회


육군병기학교는 1948년에 설립됐고 회지가 발간되던 시기 부산에 있었다. 등사판으로 인쇄되었으며, 제5기 병기사관후보생들의 단체사진과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15개월의 교육을 마친 후 전장으로 나아가기 전에 발간한 것으로 보이며 동기에 대한 석별의 정을 나타낸 시와 수필이 여러 편 실렸다.


전후 복구기


<현대문학>1955년 1월1일, 현대문학사


현재까지도 펴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예지다. 창간호에 유치환, 박목월 등의 시와 조지훈의 산문, 김춘수의 시론 등이 수록되어 있다. 창간사에서 문화의 핵심은 문학이라는 취지 아래 한국 현대문학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고전의 계승과 현대적인 지향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화의 힘”


<신세계>1956년 2월5일 창간, 창평사


시사 중심의 월간 대중잡지. 창간호 내지에 들어간 그림은 김환기와 이준이 그렸다. 조병옥이 창간사를 썼으며 ‘1959년도 국내외정세를 말한다’ 코너를 두고 신익희, 조병옥, 장면, 곽상훈, 백남훈 등 핵심 정치인들의 좌담회를 실었다.


<반공反共>1958년 1월1일 창간, 신문의신문사


공산당의 선전공세에 대한 민간차원의 대응을 목표로 창간됐다. 원래 <흑막>이라는 제호로 발행허가를 요청했으나 공보실에서 제목을 <반공>으로 할 것을 권고했다. 북한정권의 부조리함과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모택동 등 공산정권에 대한 비판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신문연구>1959년 12월25일 창간, 관훈클럽


중견 언론인들로 조직된 연구·친목 단체 관훈클럽이 만든 언론 전문지다. 편집위원은 권오기, 김종규, 이경성, 임방현, 진철수 등 5인이다. 이 잡지는 언론인의 실무에 관련된 논문과 언론 관련 교수들의 연구를 게재했으며 언론 전문지로 가장 오래됐다.

1999년 통권 70호부터 제호를 <관훈저널>로 변경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문의 자유없이 민주사회는 없다.”


4·19혁명 직후


<주간춘추>1960년 7월14일 창간, 주간춘추사


창간목적을 통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공정한 언론이 되겠다고 밝혔다.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와 인터뷰, 총선거, 교원노조 관련 칼럼, 광고 등이 실려 있다. ‘신문의 등록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기간행물 등록제로 바뀌며 언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주간춘추>는 그 당시의 대표적인 주간지로 자리매김한다.



-인천일보. 장지혜 기자.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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