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27 13:12
기록과 예술이 결합된 ‘아카이브 미술관’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425/119006806/1 [192]

(사진1 관람객들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국내 국공립 미술관 중 첫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국공립 첫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22개 컬렉션, 5만7000여 건 소장
작품 이면의 기록들 한눈에 확인
“일상을 색다르게 보는 기회로”

“최민 선생님이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기 전 남긴 연구 메모예요. 아이패드를 넘기시면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모음동 전시실. 미술평론가 최민(1944∼2018)의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은 도슨트(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그가 남긴 소장품을 감상했다. 이날 관람객들은 평론가이자 시인, 번역가 등으로 활동했던 최민이 소장했던 그림과 박사학위 논문 연구 메모, 번역서 등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일부 관람객은 관람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듯 중간중간 사진도 찍었다.

● 국공립 최초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
이달 4일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문을 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국내 국공립 미술관 중 최초의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현대미술사의 중요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모음동과 배움동, 나눔동 등 3개 동으로 조성된 이곳은 ‘기록과 예술이 함께하는 미술관’을 주제로 주요 작가들의 노트와 그림, 일기, 서신, 메모, 사진, 필름, 도서 등을 전시한다. 2017년 사전 수집 단계부터 현재까지 22개 컬렉션(인물별 수집품), 총 5만7000여 건의 자료가 모였다.

주요 전시가 열리는 모음동 3층 외부엔 종이가 둘둘 말린 형태의 알루미늄 조형물이 전시돼 있었다. ‘항해자’란 이름의 이 조형물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술관 관계자는 “자료 중 90% 이상이 도서간행물, 문서, 홍보인쇄물 등 종이류”라며 “망망대해와 같은 수집품의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과정과 어울리는 조형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미술관을 찾은 대학원생 박주현 씨(24)는 “미술 작품은 아트페어 등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만, 아카이브 미술관에서는 작품 이면의 기록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며 “설명이 자세해 사전 지식 없이 와도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김수미 씨(32)는 “뭔가를 기록하고 수집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 전시에 왔다”며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 전 작가가 갖고 있던 물건이나 지식이 궁금할 때가 많은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 “일상 속 모든 행동이 아카이브”
미술관이 들어선 땅은 과거 버스 차고지로 사용하다 방치된 공터였다. 원래 가스충전소가 들어설 예정이었는데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역 미술인들의 요구를 서울시가 수용해 미술문화복합시설 조성 방침이 결정됐다. 이후 아카이브 미술관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8년 이상 준비한 끝에 문을 열 수 있었다. 나눔동에 있는 다목적홀에선 학술행사와 공연 등이 열린다. 배움동에선 아카이브 교육이 이뤄지는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창작체험 프로그램과 ‘아키비스트’(기록연구사) 직업체험 프로그램 등이 예정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이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동이 아카이브로 남을 수 있다”며 “앞으로 흔히 지나치는 주변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23.4.26 전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