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9-22 15:33
“생활유물은 삶의 숨결이자 과거와의 통로”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62131.html [414]

(사진: 근현대 생활유물 수집가 김영준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시간여행’ 사무실에서, 아끼는 수집품 ‘버스 차장 가방’ 등을 보여주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근현대 생활유물 수집·연구가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


어린 시절, 한창 젊을 때 일상적으로 친숙하게 쓰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옛 물건들을 다시 만나는 일. 추억 속으로 떠나는 감동적인 ‘시간여행’이 아닐 수 없다. 수십년 세월을 거슬러 마주한 옛 간판, 라면 봉지, 장난감, 포스터, 하나하나 한 장 한 장이 모두 애틋하게 다가온다. 근현대 생활유물 수집·연구가 김영준(65·‘시간여행’ 대표)씨가 생활유물의 가치와 수집·보존의 의미, 그리고 직접 유물을 수집해오면서 느낀 점들을 들려줬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고미술품과 근현대 생활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연구해온 이 분야 전문가다.

-근현대 생활문화 유물이 무엇이고, 어떤 가치가 있나?

“의식주 생활, 교육, 대중문화와 산업화 과정의 생산품 등 생활사 전반에 걸친 각종 근현대의 물건들을 말한다. 일상적으로 생활에 밀착돼 사용됐던, 흔하던 물건들이 시간이 지나면 빛이 난다. 100년 뒤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복고 취향은 추억과 그리움의 감성이기도 하지만, 평화로운 삶, 즉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물건들이 수집 대상인가?

“옛사람의 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각종 자료들로서, 특히 민중들의 삶의 숨결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면 수집 대상품이다. 유물 수집이란 예사롭게 넘겨버릴 수 있는 것도 먼지 털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새로운 눈으로 과거의 삶을 바라보고,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통로 구실을 하는 물건이라면 수집 대상이 된다.”

-생활유물 수집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

“한 예로, 20여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길준과 개화의 꿈-100년 전 한국 풍물’이라는 뜻깊은 전시회가 있었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었는데 미국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 소장품들이었다. 희귀 민속품과 생활용품이 국내 박물관 소장품보다 더 많았다. 조선 말기 서민들의 사기 밥그릇·국그릇 등 흔하디흔했던 것들을, 당시 그야말로 끈으로 엮어 팔던 형태 그대로 넝쿨째 가져가 소장하였다가 전시한 것이다. 서양에선 이미 당시에 아시아 대중들의 생활 자료를 중시하고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새로운 1000년을 앞둔 1999년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2명의 연구사가 서울 중부시장을 방문해 컨테이너 2대 분량의 한국 생활용품을 구매해 갔다. 100년 동안 개봉하지 않을 ‘타임캡슐’용으로, 특히 주방용품 중심이었다.
100년 뒤 ‘대한민국 생활사’ 전시를 위해 우리는 또다시 해외 박물관에서 유물을 빌려와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사라져가는 생활유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도 개인 생활사박물관이 늘어나는 추세다.

“‘100년 전 풍물’ 전시회 때
미국 박물관 소장품 빌려와 전시
같은 일 반복해선 안돼
흔한 것 먼지 털고 의미 찾아야”

“최근 10여년간 국내 곳곳에 지자체와 개인들이 운영하는 근현대 생활사박물관이 10곳 이상 생겨났다. 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아직 미흡하다. 한국박물관협회 등록 사립박물관 및 미술관 수가 400여개에 이르지만, 근현대 생활분야 박물관의 등록 수는 미미하다. 시설기준 등 등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집가들이 질보다 양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라디오의 경우 수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라디오 변천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옛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시대별·테마별로 유물을 수집해 정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관람객들에게 추억과 감성만을 팔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치 있는 유물의 보존과 전시를 통한 교육이라는 박물관의 유물 개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다른 나라의 생활유물 관리는 어떤가?

“이웃한 일본과 중국의 경우 포스터·장난감·성냥 등 생활유물 분야마다 수시로 전시회를 열고 전시품 사진과 목록을 담은 다양한 도록을 펴내고 있다. 유물을 시대별·테마별로 정리해놓은 수많은 도록들이 서점에서 판매된다. 각 분야 유물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교육적 효과도 크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근현대 생활사 전문 전시회도 많지 않을뿐더러, 도록 발행이 되지 않은 분야가 대부분이다. 영화 포스터류 도록은 몇 종 있지만, 계몽 표어나 홍보 포스터, 상품 포스터류 도록 등은 아직 발행된 바 없다. 장난감과 인형 분야만 해도 태엽류·로봇류·봉제류·고무류 등 테마별로 유물이 풍부하지만 아직 어떠한 도록도 만들어진 바 없다. 다행히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지자체 시립박물관들에서 생활유물에 관심을 갖고 기획전 등을 열고 있어 기대감이 크다.”

-40년 가까이 직접 생활유물을 수집해왔는데, 특히 애착 가는 품목이 있다면?

“지금까지 수집해온 1300여종 15만여점의 물건들이 다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꼽으라면 1960년대 여성 가방 3종을 말하고 싶다. 버스 차장 가방과 보건사회부 가족계획운동 가방, 그리고 화장품 외판원 가방이다. 당시엔 너무 흔해서 보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 찾기 어려워진 사연 많은 가방들이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기간에 남북에 뿌려진 ‘삐라’(전단지. 한국전쟁 동안 20억장이 뿌려졌다)들과 70~80년대 민주화운동 전단지·기록물, 50~60년대 남북한의 계몽·홍보 포스터들도 소중하다.”

-더 하고 싶은 말은?

“근현대 생활유산·유물 보전에 대기업들이 좀더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대화 시대 기업의 생산물이 모두 생활유물들이다. 각 기업이 뿌리찾기를 통해 초창기 설계도·생산물·기록물 등을 찾아낸다면 국내 생활유물의 체계적 수집·보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 한겨례신문. 이병학 선임기자. 201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