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9-10 18:39
기획연재 '아카이브의 과거-현재-미래' Ⅱ -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 사례를 중심으로(下)
   http://www.theartro.kr/issue/issue.asp [603]
방법론으로서의 아카이브(下)

(3) 한스 반 다익 아카이브(Hans Van Dijk Archive)

네덜란드 출신 큐레이터이자 딜러인 한스 반 다익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중국 현대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왔다. AAA는 이 아카이브를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를 베이징 리서처 피오나 허(Fiona He)의 주도하에 2011년부터 진행해, 2014년 10월 온라인에 공개한다. 피오나 허는 융 츠 킨(Yung Tsz Kin)과 함께 한스 반 다익 아카이브에 대한 소개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시각 에세이를 Field Notes에 담았다. 한스 반 다익이 1990년대 중국 현대미술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혹자는 그를 ‘한 사람의 기관(One Man Institu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그는 흔히 ‘나이 많은 한스’로 불리는데, 이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한스 반 다익은 1986년 중국에 건너가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 현대미술에 관련된 수천 점의 사진, 편지, 서적들을 아카이브했다. 미술, 공예, 다자인을 공부한 후 1960년대 중반 작은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명왕조 시대의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결국 1986년 중국으로 건너간다. 난징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근대미술 연구를 진행했다. 이 무렵은 1985 신미술 운동(1985 New Art Movement)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고 그 역시 항저우, 상하이, 베이징의 미술 발전에 익숙해지면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업 활동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에는 네덜란드로 돌아가 2년간 중국사, 미술사, 문화에 관한 지식을 쌓았고, 1993년 1월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에서 ‘중국 아방가르드(China Avant-Garde)’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는 딩이(Ding Yi), 정 쟈이(Geng Jiayi), 팡 리준(Fang Lijun), 장 펠리(Zhang Peili), 왕 광이(Wang Guangyi), 황 용핑(Huang Yongping)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그 해에 ‘중국의 새로운 미술, 포스트 1989(China’s New Art, Post-1989)‘가 홍콩,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그리고 45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따라서 1993년은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역사적인 해로 여겨진다.

1998년 한스 반 다익은 동료들과 함께 역사적인 미술 기관, China Art Archive and Warehouse(CAAW)을 설립했다. 이에 앞서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New Amsterdam Art Consultancy(NAAC)를 운영하면서 다수의 중국 작가들을 서구 큐레이터, 기자, 컬렉터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소개했다. AAA는 CAAW에 있는 자료를 디지털화하면서 한스 반 다익의 귀중한 수집물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사백 팔십여 명의 작가 파일, 중국어·영어·독어·네덜란드어로 된 오십여 가지의 간행물과 잡지, 그리고 그가 중국·독일·네덜란드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 주고받은 서신 등이 있었다. 또한 칠십 명이 넘는 중국 및 서구권의 작가, 평론가, 학자들이 중국 근현대미술에 대해 친필 원고와 그 글의 본문 텍스트, 천 삼백여 권의 예술가 논문,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서구권 예술가들의 전시 카탈로그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한스 반 다익은 자신이 쓴 글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아카이브에 따르면 그는 상하이 출신 작가 딩 이와 매우 가깝게 지내면서 1994년 상하이에서 한 번, 1998년 베이징에서 또 한 번, 총 두 번의 딩 이 개인전을 기획했다. 한편 NAAC가 기획한 첫 번째 전시는 《자오 반디, 문플라이트(Zhao Bandi, Moonflight)》(1994)였다. 당시 가장 유명한 젊은 사실주의 회화 작가였던 자오 반디는 이 전시를 계기로 작업을 그만두어 화제가 되었다. 이를 본 그의 스승들은 회화를 그만둔 것에 대한 비난의 글을 발표했는데, 한스 반 다익은 이례적으로 이 젊은 화가의 급진적 변화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NAAC와 함께 한스 반 다익은 중국 작가들의 전시 기획과 더불어 행사와 전시를 통해 중국과 유럽 사이의 예술 교류를 활발히 추진했다. 독립 미술 기관인 NAAC는 전시를 열기 위한 공간은 없었지만 그때그때 다른 공간을 빌려 단기 전시를 열었고, 1996년에는 중앙미술학원(China Central Academy of Fine Art)의 CIFA 갤러리를 임대해 다수 작가의 개인전과 기획전을 개최했다. 1990년대 후반 한스 반 다익은 컬렉터 프랭크 우테르하겐(Frank Uytterhaegen)과 작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와 함께 베이징의 교외에 CAAW를 설립했다. 이곳은 실험적 전시를 기획하는 독립 미술 공간이자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를 혼합한 공간으로, 대안 공간과 상업 갤러리 둘 다 부족했던 당시 중국 미술계에선 독특한 모델이었다. 그는 2001년 CAAW가 새로운 장소로 이전할 때까지 전시 프로그램 전반을 관할했는데, 아쉽게도 베이징 자오창디 지역에 옮긴 직후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월 16일 중국 미술 전문가들은 아트바젤 홍콩의 살롱 시리즈 ‘Hans van Dijk: Dialogues in the Development of Contemporary Art in China’에서 그가 평생 동안 중국 미술에 쏟아 부은 열정을 회상했다. 이는 한 사람이 미술계 전반에 끼칠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으며 5월 24일부터 UCCA(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 열리는 ‘Hans van Dijk: 5000 Names’ 전시를 앞두고 있던 터라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필립 티나리(Philip Tinari, Director, UCCA)가 모더레이터를 맡았고, 4명의 패널인 장웨이(Zhang Wei, Vitamin Creative Space), 피오나 허, 마리앤 브로우워(Marianne Brouwer, Curator of Hans van Dijk: 5000 Names), 이안 양(Ian Yang, Curatorial Fellow, Witte de With, Center for Contemporary Art)은 각자 한스 반 다익의 생애 및 업적은 물론 그의 성격, 신념, 소소한 일화까지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의 어시스트로 미술계에 입문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장 펠리는 경제적 난관에 처했을 때조차도 미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열정으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한스 반 다익의 면모와 그의 검소한 생활 태도를 강조했다.

(4) 남부 개념주의 네트워크(Southern Conceptualisms Network)

2007년 남미 연구자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남부 개념주의 네트워크1)’를 결성한다. 그들은 정치적 갈등이 극심했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를 중심으로 남미의 다양한 예술적 실행을 평가하고 맵핑하는데 주력한다. 이 네트워크의 목표는 역사 관련 자료를 보존함으로써 대다수의 소규모 남미 예술사와 정치사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 정치사가 단지 미술사의 자료만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토론, 기억, 논쟁을 유발하는 적극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도록 한다. 이들이 선택한 명칭 또한 자신들의 철학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기서 ‘개념주의(conceptualism)’는 ‘제한적인 예술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실행하고 그것의 사회적 기능을 이해하는 하나의 다른 방식’이다. ‘남부(Southern)’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종속된 장소들을 의미하는데, 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전통적인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 ‘남부’ 국가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멕시코, 페루, 에콰도르, 칠레 등에서 활동하는 쉰 다섯 명의 리서처,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사회학자, 사회운동가로 구성된 이 그룹은 활동에 있어서 독립성을 최우선에 둔다. 그래야 현재 학계나 미술 시장에서 유행하는 주제를 택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정치적 안건을 선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남미 미술이 국제무대에 노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세계 대다수의 대학, 컬렉터, 아트 딜러들은 남미 작가들의 아카이브를 구입하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가 예술에 대한 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 국가들에게 민감한 문제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남미 예술가들의 아카이브를 보존하기 위해 유럽이나 미국의 기관으로 아카이브를 팔았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남미 미술 자료는 유럽 및 미국의 미술관과 유수의 갤러리들에 넘어가서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휴스톤 대학(University of Houston)의 남미 미술 아카이브가 이러한 방식으로 자료를 구입해서 아카이브를 구축한 경우이다. 결국 다시 식민주의적 논리로 북부와 남부의 분리를 강화하고 북미와 유럽 지식 생산에 기여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남부 개념주의 네트워크는 남미의 지역 대학이나 기관이 경쟁력을 강화하여 그들 고유의 아카이브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지 않은 이들은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저장하지만 원본 자료는 자신들이 소유하는 대신 해당 지역의 아카이브나 도서관에서 자료를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이 자료들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은 다양한 분야의 리서처들이 컨퍼런스를 열어 그 자료들에 대해 논의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가 진행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Cartographies’(2007-2009)로, 일곱 국가(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라과이, 페루)에서 활동하는 연구원들의 결과물을 맵핑하는 것이다. 연구의 첫 단계는 아카이브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이 아카이브를 관리하는지, 아카이브들의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50년대 이후의 비형 예술에서 각국의 중요한 행사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카이브 현황을 파악하는 일은 아카이브의 공공적 중요성과 더불어 이에 대한 지원과 보존이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우루과이 시인 클레멘크 파딘(Clemente Padin)의 아카이브를 몬테비데오에 있는 공공 기록 센터로 옮기는 일을 들 수 있다. 클레멘트 파딘은 남미, 미국, 유럽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시인들의 네트워크를 쌓는 프로젝트에서 편집자로 활동했다. 1977년 우루과이 정부에 의해 감금되면서 아카이브를 빼앗겼지만, 1979년 출옥한 후 자신의 아카이브를 다시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9년 SEACEX,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Reina Sofia Museum), 미술사학자 페르난도 데이비스(Fernando Davis), 그리고 큐레이터이자 이 네트워크의 창립 멤버인 크리스티나 프레이르(Cristina Freire)가 그의 아카이브를 정리하여 국립대학(Universidad de la República)의 일반 아카이브로 소장되도록 했다.

1) Red Conceptualismes del Sur 또는 Souther Conceptualisms Network라고 함.

글을 마치며
‘방법론으로서의 아카이브’에 소개된 네 개의 사례연구에서 이들 아카이브가 협력과 공동 작업을 통해 원본의 소유를 강조하고 지키려는 태도보다 그것을 어떻게 공공화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아카이브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와 행정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추구하는 반아베뮤지엄, 한 사람이 마치 기관 자체인 듯 일생을 바쳐 중국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한 한스 반 다익의 예, 일본 미술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작가 인터뷰를 제작하고 그 녹취록을 공개하는 일본 미술 구술사 아카이브, 정부 보조가 없는 국가들에 속한 아카이브 자료를 정리하도록 돕고, 그 국가에 속한 대학이나 기관의 도서관이 보존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남부 개념주의 네트워크를 접하면서 우리가 참조하고 연구할 부분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반아베뮤지엄 아카이브 글에서 “다른 아카이브의 렌즈를 통해 우리 아카이브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들에 관해 배울 수 있다”고 한 부분은 시사점을 남긴다. 이제 아카이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와 예술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이성희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아트인컬처]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어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의 한국 리서처로 일했다. 주로 현장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해왔다. 현재는 한국 미술관련 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과 전시기획을 하고 있다. 2013년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에 참여하여 2014년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Art as Livelihood)>(두산갤러리, 서울)를 공동 기획하였다. 프로젝트비아의 파일럿 프로젝트 지원에 선정되어 2014년 11월에 <오큐파이 무브먼트 이후_홍콩과 서울>(아트스페이스풀, 서울)을 기획한다.

-아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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