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확인 김준혁 교수 논문발표.
쁠랑시 공사가 반환안되게 유도
"정교하지 못해 팔지도 못하니…"
파견 민영찬이 평가절하해 보고
국가관계 탓 우호적태도 취한듯
지난 6월 프랑스에서 발견된 최고(最古) 한글본 '정리의궤(整理儀軌)'가 프랑스로 넘어가게 된 과정이 밝혀졌다.
정리의궤를 처음 확인한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지난 27일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한국중앙사학회 하계 정기워크숍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및 동양어학교 소장 정리의궤의 분석과 향후 활용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 발표를 통해 "정리의궤는 초대 한국 주재 대리공사로 임명됐던 프랑스인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가 고종황제를 설득해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정리의궤를 전시하게 했으며, 이후 의궤가 한국으로 반환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프랑스 측에 기증하도록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쁠랑시는 1898년 6월 3일 본국의 외무성 장관에게 공문을 보내 대한제국이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전 세계에 이를 알리고자 했던 고종은 적극적으로 만국박람회에 참여했다.
당시 만국박람회 조선전시관에는 서책, 목기, 가구, 악기, 의복, 무기류, 화폐, 도자기 등 다양한 물건이 전시됐으며, 정리의궤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박람회가 끝난 뒤 전시된 물품들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부분 프랑스에 기증된다.
만국박람회에 참여했던 문신 민영찬(1874~1948)은 박람회가 끝나고 조정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올린다. "우리 정부에서 보낸 물품들이 심히 정려치 못하여 가격을 요구하지 못하였기에 팔아버릴 수도 없었고, 되가져 오려 하니 운비(運費)만 과다하여 여러 곳의 상설박물관에 주어서 영구히 빛내라 하고, 프랑스 학부대신의 서찰과 박람회 장관 대리인 라베의 영수표를 가져와 농상공부에 주었다"고 보고했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의궤를 수중에 넣은 쁠랑시는 정리의궤 13권 중 12권은 자신의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했으며, 1권(성역도)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경매로 팔았다가 나중에 이를 구입한 경매상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하면서 현재까지 그곳에 남아 있게 된다.
김 교수는 "고종실록, 1901년에 간행된 한국서지(韓國書誌), 파리만국박람회 자료, 각종 논문과 신문 등을 통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며 "프랑스인들이 '매우 정성들인 필사본'이라고 극찬한 정리의궤를 민영찬이 정교하지 못해 프랑스 측에 기증해야 한다고 보고했던 것은 당시 프랑스가 대한제국을 보호해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쁠랑시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해 했던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경인일보. 김선회 기자.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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