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04 09:02
[책동네 산책] 해외 한국고서 관심 갖자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6/21/20130621003455.html [601]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브린모어 칼리지는 1885년에 설립된 여자대학이다. 한국인에 잘 알려진 웨슬리여대를 포함해 미 북동부 인문학 중심의 명문여자대학을 일컫는 ‘세븐 시스터즈 칼리지’ 중 하나다. 이 대학 희귀본 도서관에는 조선시대 고서 80여책이 소장되어 있다. 브린모어 칼리지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브린모어대학 졸업생인 헬렌 채핀(1892∼1950)의 기증본이다. 아시아 미술에 박식한 채핀은 1950년 사망 직전 고서와 미술품 등 수백 점을 모교에 기증했다.

기록에 의하면 채핀은 1920∼30년대 중국·일본·한국 등에서 연구했고, 한국에는 1927년경에 방문했다. 채핀이 수집한 고서에는 ‘행실도(行實圖)’ ‘능엄경(稜嚴經)’같이 목판화가 포함된 자료들이 상당수다. 중국어를 알고 중국 미술을 공부했던 그녀는 우리가 파리 여행 때 센강변의 고서점에서 사오는 책처럼 한자로 쓰인 한국의 고서에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언필칭 외국에 소장된 한국 고서에 대해 통상 ‘약탈’ ‘환수’ ‘불법’ 등의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해외에 있는 우리 고서들 중에는 구한말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서에 흥미를 갖고 수집해 간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이 수집한 자료들은 규모가 크진 않아도 생전에 혹은 사후에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그중 적잖은 자료는 한자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동양의 책을 모르는 서양인들에 의해 중국 장서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가 담겨 있는 고서는 역사 연구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사료이다. 불법적으로 소장되어 있는 유물은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료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장기적인 조사 그리고 연구가 필수적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국립기관은 이런 해외 고서들을 발굴, 디지털화해 공개하고 있다. 고서는 확인되지 않은 동양 어느 나라의 자료가 아니라 21세기 문화 중심, 한류를 탄생시킨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을 자각하면서 번역되고 연구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분명히 있다.

이혜은 숙명여대 겸임교수,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가

- 세계일보 2013.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