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04 11:14
[생활이 문화다] ③ 문화사랑방, 도서관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11/04/12630130.html?cloc=ol… [700]
책 읽으러 갔다가 사귀고, 즐기고, 꿈꾸게 됐죠

경기도 고양시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 이용 주부들로 구성된 뮤지컬 동아리 ‘바스락’ 회원들이 지난달 23일 도서관 안에서 뮤지컬 `써니`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도서관이 있어 동네가 푸근하다”고 즐거워했다. [김성룡 기자]

지난달 23일 저녁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의 한 상가건물 6층. 열 평(33㎡)이 채 안 되는 작은 방이 어린이책으로 가득 차 있다. 40대 초·중반의 여성 예닐곱 명이 스트레칭 등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Sunn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1970년대를 풍미한 디스코 그룹 보니엠의 히트곡 ‘써니’가 흘러나오자 여성들은 일사 분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사에, 육아에, 맞벌이에 지친 중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 작은 방은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2009년 문을 연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이다. 조합원이 주축이 돼 지난해 봄 주부들의 뮤지컬 공연 동아리 ‘바스락’을 만들었다. 뮤지컬 선생을 모셔 아이들을 가르치다 엄마들이 직접 해보고 싶어진 거다. 이날 바스락 회원들은 같은 이름의 국내 영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써니’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26일 고양시에서 주최한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다.

과거 교회·시민단체의 역할 대신해

 이들 앞에서 도서관이 책 읽고 빌려주는 곳 아니냐는 질문은 고리타분하다. 그런 기능은 도서관의 수 많은 용도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동네 문화사랑방이다. 연령별 각종 강좌 운영은 기본, 주민 공동 문집을 만들고 지역 역사를 수록한 동네 탁상 달력을 만든다. 수시로 문화행사가 열려 사람들이 모이는 마실 공간이다. 바스락 회원 오미숙(41)씨는 “도서관 덕분에 삭막한 아파트 단지가 푸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도서관이 변하고 있다. 단순한 도서 열람이나 대출 기능은 옛말이다. 동네 축제가 열리고 인문학 강좌가 개설된다.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지역에 ‘신문물’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점으로 주목받으면서 도서관의 기능 확장이 진행되고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씨는 “10년 가까이 전국 도서관으로 강의를 다니며 그런 변화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더 이상 정보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에 있어서 구심적 역할을 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대학이나 교회, 시민단체, 정당정치 등이 담당했던 시민교육의 역할을 이제는 일정 부분 도서관이 떠맡는다는 얘기다.

“도서관은 내게 사람 이어주는 끈”

 대전광역시 중리동의 주부 공선하(49)씨는 도서관 덕분에 삶의 활기를 되찾은 경우다. 그는 9년 전 강원도 태백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사교성이 부족한 그는 집에서 걸어서 7~8분 거리인 대덕구 평생학습도서관을 찾았다. 주부 독서모임 책보리회에 가입해 친구도 사귀고, 시·소설, 인문학 서적 등을 읽으며 ‘고졸’이라는 열등담도 달랬다.

 6년 전 대장암이 찾아왔지만 도서관을 향한 그의 발길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현재 책보리회 회장이다. 뒤늦게 시작한 방송통신대(가정관리학과) 공부를 위해 일주일 평균 4일을 도서관에 나간다. 그는 “도서관은 내게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자 인생의 윤활유”라고 말한다.

이 도서관 오민영 사서는 “‘길 위의 인문학’ 같은 도서관의 특별 프로그램도 공 회장님 같은 분이 없으면 운영이 곤란할 정도”라고 말했다. 길 위의 인문학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시작한 일종의 지역학 프로그램이다. 전문가를 초빙해 동네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쌓고, 주변 명소 탐방도 한다. 공씨를 포함한 책보리회가 그런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감초 역할을 한다는 거다.

 도서관은 역사적으로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근대 공공도서관이 시작된 건 18세기 미국에 와서다. 물론 당시 도서관의 기능은 전적으로 정보서비스에 한정됐다. 요즘 도서관 이용자들의 다양한 욕구 변화는 도서관 프로그램의 변화를 부른다.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10평 미만 면적의 도서관을 지원하는 작은 도서관 활성화 사업의 혜택을 받는 경우다. 한 해 600만원 가량 지원받는다.

“인문학 진흥 등 고유 기능도 중요해”

 반면 도서관 정책이 문화사랑방 쪽으로 기울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래의 정보서비스 기능, 그에 따른 인문학 진흥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외형상으로 한국의 도서관이 뒤처진 점도 문제다. 선진국 주요 도시와 비교해 1인당 장서 수 등이 크게 부족하다. <그래픽 참조>

 강남대 곽철완 교수(문헌정보학)는 “도서관 외형을 무작정 늘리려 하기 보다 문체부·교육부·국방부 등으로 관리책임이 나뉘어 제각각인 도서관들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 협력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중앙일보 201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