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책 이야기가 인터넷 검색순위에 올랐다.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책 한 권이 약 150억원에 낙찰됐다는 뉴스였다. 17세기 청교도 정착민들이 만든 최초의 인쇄 도서 『베이 시편집』이라고 했다. 한데 여기서 눈길이 간 건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책값이 빌딩 한 채 값이라니” “보물도 아니고 책 한 권이…” “책 한 권으로 인생 역전” 등, 관심은 온통 그 엄청난 가격에 쏠려 있었다. 이보다 10배는 비쌌던 미술품 가격에 이 정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책값은 비싸면 안 되나?
최근 출판계 관계자에게서 “한마디로 책 시장이 움직이질 않는다. 독자들이 책을 안 산다”는 말을 들었다. 보물도 아닌 책이 비싼 게 이상하다는 네티즌의 반응은 어쩌면 책 시장 전반에 깔려 있는 정서인지 모른다. 돈까지 써가며 무슨 책을 보느냐는 정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했던 자료에선 성인 10명 중 3명 이상이 연간 책 한 권 안 읽고, 가구당 도서구입비는 10년 전보다도 28% 줄어든 1만9026원이었다. 한국인은 왜 책을 안 읽을까. 무식을 지향하고 지성을 경원시해서?
최근 몇몇 젊은 친구와 책에 대한 얘기를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책에 질렸거나 독서방법을 몰라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스펙 준비하느라 두꺼운 대학노트 한 권 분량의 독서노트를 작성했는데 책 읽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읽으라는 그 많은 필독서들은 무슨 말인지,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는 거다. 그래서 대학 입학 후 이런 ‘쓸데없는’ 독서를 안 한단다. 하긴 사람들은 “독서 많이 하느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얼마나 읽어야 많이 읽는다고 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되지만 어쨌든 독서조차 양으로 따지는 게 우리 문화이긴 하다.
글 쓰는 기술에 대해 묻는 한 젊은 친구에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가사문학 몇 개를 외우면서 먼저 한국말의 리듬을 익혀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는 “가사를 배우면서 빨간 펜으로 내용 분석만 했지 리듬은 생각도 못해봤다”고 말했다. 가사의 진짜 아름다움은 빼놓고 무엇을 배운 건지…. 갓 대학을 졸업하고 고위공직자 코스에 접어든 한 청년은 “요즘 독서를 하려는 열망은 가득한데 어떻게 체계적으로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학교 다닐 때 ‘즐거운 독서방법’은커녕 ‘필요한 독서’를 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단다.
요즘 입시준비를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독서방법을 알려주는 학원들이 성업 중이란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방법을 몰라 책을 읽지 못한다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우리 국어교육, 독서교육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글=양선희 논설위원
- 중앙일보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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