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2-04 09:43
박경리도 헌책 팔던 곳 … 없는 책이 없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12/04/12894000.html?cloc=ol… [721]

추억의 헌책방이 늘어선 인천시 금창동 배다리 헌책방 거리. [안성식 기자]

지난 2일 오후 인천시 금창동 배다리 헌책방 거리. 7개 헌책방이 옹기종기 모인 이곳의 ‘아벨서점’에서 “찾았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울 강남에서 온 황혜옥(46·여)씨가 고(故) 기형도 시인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을 발견한 것이었다. 황씨는 “20대 때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며 “여기서 찾아내니 너무 반갑다”고 말했다.

6·25 직후 손수레 책방까지 몰려

 이날 아벨서점은 평일 낮시간인데도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책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헌책방 6곳도 마찬가지였다. 아벨서점을 운영하는 곽현숙(64·여)씨는 “배다리에 가면 없는 책이 없다는 입소문이 나고 주변에 문화공간이 조성되면서 요즘엔 하루 50명 이상, 주말에는 150명 넘게 손님이 찾는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 헌책방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때 버려졌던 인천 배다리에 방문객 발길이 몰리고 있다. 책과 추억, 문화를 찾아서다. 인천시민뿐 아니라 인접한 서울·경기도는 물론 멀리 영호남에서도 방문객들이 오고 있다. 옛 항구와 가까워 ‘배가 닿는 곳’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전성기엔 50여 곳 … 현재 7곳 남아


한 헌책방 안에 책이 빼곡히 꽂힌 서가에서 손님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안성식 기자]
1900년대 초반 인천항을 통해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이곳은 ‘근대 문물의 집성지’가 됐다. 국내 첫 사립초교인 영화초교와 최초의 공립 초교인 창영초교(옛 인천공립보통학교)가 이곳에 있다. 1917년엔 성냥공장 ‘조선인촌’이 이곳에 들어섰다.

 헌책방 거리가 생긴 것은 6·25 직후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 손수레(리어카)에 이것저것 싣고 나와 장사를 할 때 손수레 책방도 있었다. 그중 몇몇이 정착했다. 학교가 생기고, 학생들이 헌 교과서·참고서를 구하러 배다리에 오면서 헌책방은 50여 곳으로 늘었다.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도 한때 이곳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다. 주변에 미제 물건을 파는 ‘양키시장’, 양복점이 늘어서 ‘라사거리’까지 들어섰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헌책을 찾는 이들이 사라지면서 가게는 문을 닫았다. 양키시장과 라사거리까지 없어지면서 쇠퇴가 가속화됐다. 결국 여기엔 헌책방 7개만 남았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7년이다. 인천시가 중구 신흥동과 동구 동국제강을 잇는 산업도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직전에 내놓은 게 단초였다. 배다리 한복판을 지나는 도로가 생기면 헌책방은 완전히 사라질 판이었다.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자’며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인들이 나섰다.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거리에 조형물을 세웠다. 명물거리란 소문이 퍼지면서 방문객이 늘어 배다리는 조금씩 활기를 찾아갔다. 결국 인천시는 배다리 관통도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축제·전시회 열며 문화공간 부활

 배다리는 그 뒤로도 변신을 계속했다. 옛 양조장 터와 빈집에 전시문화공간이 들어섰다. 벽화와 헌책방이 있는 명물거리에 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지자 다시 여기에 문화공간이 들어서는, 일종의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올 10월엔 ‘배다리 헌책방 축제’도 열었다. 지난 2일 배다리에 들른 김준우(54)씨는 “헌책보다 추억을 사러 이 거리에 들르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 문구도매·전통공예상가에도 손님이 늘어나는 등 지역 경제도 꿈틀거리고 있다.

 배다리와 관련, 인천시립박물관은 내년 2월 2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안녕하세요, 배다리’전을 열고 있다. 헌책방거리 등 배다리 관련 사진과 실물자료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인천=최모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 중앙일보 201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