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01 11:43
韓, 애니메이션 동화책이 1위할 때…美, 국방장관 회고록이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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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미국과 너무 다른 한국 출판시장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출판시장의 현주소와 트렌드를 보여주는 지표로는 여전히 유용하다. 하지만 영화나 TV 등 외부 요인에 베스트셀러 목록이 휘둘리면서 이런 기능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베스트셀러, 시장지표 기능 상실

교보문고의 2월 마지막주 베스트셀러 종합집계를 보면 《겨울 왕국 무비 스토리북》이 1위,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 2위,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3위, 《겨울왕국》이 4위,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5위다. 매일 집계되는 예스24의 28일 현재 베스트셀러 10위 안에도 외부 요인에 힘입은 책이 5권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이런 책들이 최근의 출판시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케이트 디카밀로가 쓴 동화 《에드워드 툴레인의…》는 2009년 2월에 나온 책이다. 출간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1월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13주 동안 종합 1위에 올라 있던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을 끌어내리고 1위를 차지하는 등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교보문고는 “이 책의 구매자 중 20~30대가 66.7%로 가장 많고, 40대 여성 독자들의 구매도 17.3%에 달해 이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저자의 인지도와 탄탄한 콘텐츠 덕분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전에도 베스트셀러에 오르긴 했지만, 저자의 ‘힐링캠프’ 출연 직후 하루 판매량이 4배 이상 급증했다. ‘어느날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로 인해 양서들의 순위가 뒤로 밀리거나 아예 목록에서 탈락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미국선 베스트셀러가 고급 담론 주도

한국과 달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베스트셀러가 대중을 위한 고급 담론까지 제공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월 말 현재 뉴욕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하드커버 기준) 1위는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의 회고록 《DUTY》다. ‘의무’라는 뜻의 책에 장관으로서 수행했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회고를 담아 미국 사회에 공직자의 의무가 무엇인지 화두를 던졌다.

2위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수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새머의 책 《THINGS THAT MATTER》, 3위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 4위는 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종교적 신화에 역사적 질문을 던진 빌 오라일리의 《KILLING JESUS》다. 2~4위에 오른 책들은 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17주 이상 지키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동물 멸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조사한 《THE SIXTH EXTINCTION》,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장관 재임 시기를 평가한 《HRC》,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여성이 직면한 유리천장을 지적하는 동시에 여성 자신의 분발을 촉구한 《LEAN IN》이 5·6·7위를 차지했다. 책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의제를 담아 대중에게 전달하고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는 구조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시장이 고급 담론을 주도하면서 책을 매개로 토론이 벌어지는 문화가 정착돼 있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선 논리와 이성보다 감성과 정서에 호소하는 책들이 영상매체를 등에 업고 많이 팔리면서 출판시장이 경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 한국경제 20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