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18 17:17
“미래 종이책, 퍼블리터가 주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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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문화의 위기 탈출은 뛰어난 편집자 손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박맹호 민음사 회장, 박은주 김영사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내가 책이라면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 책이 내 인생을 바꿔 주었어.”(쥬제 죠르즈 레트리아 지음, ‘내가 책이라면’/국민서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한국의 출판기획자’라는 책에 실린 ‘오직 믿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권두 제언에서 이 말을 인용하면서 출판인 역시 독자들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고 싶다고 썼다. ‘한국의 출판기획자’는 우리 출판계의 건강한 담론을 주도한 출판전문지 ‘기획회의’가 15주년을 맞아 출간한 책이다. 책 시장이 고사 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출판기획자’에서 출판 최전선에 선 출판인들은 출판의 지속가능성과 생명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나는 책은 태생적으로 다품종 소량 소비의 ‘마니아 미디어’라고 굳게 믿고 있다”라며 “그 믿음을 바탕으로 더 세분화된 기획을 할 수 있기를, 내가 지지하는 저자가 디지털 환경에서 더 매력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네이버 플랫폼에서 100원으로 다운로드해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의 하루 매출액이 수천만 원이라고 한다. 100원을 지불한 독자 누구도 오탈자나 편집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는다고. (중략) 재독이 아닌 재탕이라는 용어를 다시 읽는다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로맨스 소설의 독자를 떠올리면서 책으로 다시 귀환하는 미래 출판기획자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기획회의’를 내고 있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미래는 ‘편집(編輯)적 사고’를 지닌 ‘퍼블리터(publitor)’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며 “에디터(editor·편집자)이면서 퍼블리셔(publisher·출판사대표)인 사람이 퍼블리터”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제이슨 엡스타인은 ‘북 비즈니스’에서 미래의 책은 대형출판사가 아닌 편집자와 출판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이런 면에서 출판은 새로운 황금기의 입구에 서 있다”고 낙관했다.

‘이 기획자를 말한다’ 코너에서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종이책으로 한정 지을 순 없겠지만 나는 출판이라는 것이 모든 산업의 기초 작업을 해주는, 사회 전 분야의 ‘이론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책이라는 것은 산업이 존재하는 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주 김영사 대표도 “새로운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는 이 시대야말로 진정한 출판 편집인의 시대가 열리는 때”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기획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디자인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마케팅을 하면 독자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기획과 편집에 출판의 미래가 달렸다”며 “출판사가 보유한 30대 후반이나 40대 중후반 기획자들을 전면에 배치해 출판의 혁신적인 전환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책은 출판인들이 뽑은 주목할 만한 출판기획자도 다뤘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리라이팅 클래식’으로 고전 독자들을 젊게 만든 유재건 그린비 대표 ▲‘미쳐야 미친다’‘조선의 뒷골목 풍경’ 같은 전설적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 20권),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 연작 등 지속가능한 출판을 모색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등을 인문·역사 분야를 빛낸 출판기획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생각의 나무’ 역시 기획을 불태운 출판사였다”며 “그 불꽃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박광성 당시 대표였으며, 편집장 김수한은 그 파트너였다”고 밝혔다.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와 홍미옥 새물결 대표를 ‘독특한’ 기획력으로 새로운 시대의 사회과학 출판을 이끈 기획자로 꼽았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 문화일보 2014.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