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31 11:36
주민들 문화 갈증 풀어주는 ‘세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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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세종시 세종도서관에 900여명의 주민이 몰려들었다. 도서관 ‘책 드림 콘서트’에서 소설가 박범신의 강연, 국악 소녀 송소희의 공연 등이 펼쳐졌고 주민들은 크게 호응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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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도서관 전경. 세종도서관 제공


개관 100일 동안 16만명 찾아
책 콘서트·문화학교 운영 등
다목적 문화공간 구실 톡톡


유모차를 밀고 도서관에 들어선 김선미(43)씨는 1층 로비에 가득 놓인 의자의 두번째 줄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26일 오전 11시40분,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국립세종도서관에는 김씨와 같은 이 지역 주민과 인근 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900여명이 몰려들었다.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준비된 ‘책 드림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9월에 세종시로 이주한 뒤에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됐어요.” 김씨는 현재 동네 주민 10여명과 함께 ‘책마루’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도 꾸려나가고 있다. 그는 “직업 때문에 세종시에 이주해서 사는 이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이용할 문화시설에 대한 수요가 아주 높다. 현재까지는 세종도서관이 유일한 공간이라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사람이 엄청나게 몰린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소설가 박범신의 강연,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며 더욱 유명해진 ‘국악 소녀’ 송소희의 공연 등이 진행됐다. 다 읽은 책 한 권을 가져오면 신간 두 권으로 교환해주는 행사도 진행했는데 미리 준비한 1000여권이 모두 동이 났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행사 내내 자리를 지키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다. 박범신 작가는 “호수 옆에 아름답게 지어진 세종도서관을 보니 세종시의 앞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세종도서관은 정부 청사 건물 끝쪽, 호수공원 바로 옆에 책을 펼쳐놓은 모양새로 자리잡은 4층짜리 건축물이다. 코앞에 호수공원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주민들의 여가,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도서관에는 일반 단행본을 열람·대출하는 곳부터 노트북을 이용하는 공간, 여럿이 둘러앉아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 어린이들이 단체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두루 갖춰져 있다.

2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정부 청사가 서울에서 세종시로 이전하고 있지만 세종시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경기도 분당의 4배 규모(73㎢)의 부지에는 지난 1월말 현재 154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 부처가 대부분 이전을 마친 상태이다 보니 인구는 이미 지난해 12만명을 넘어섰다.

건물만 지어졌다고 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점이나 극장, 공연장은 물론 당구장, 볼링장 등도 찾아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 단위로 이주를 한 사람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에 세종시로 이사왔다는 최아무개(37)씨는 “서울에서만 살다 보니 도시에는 당연히 대형 서점이 있는 건 줄 알았다. 여기 오니 주민들이 이용할 서점도 한 군데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17살, 11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김경란(44)씨는 “2년 전 이주했을 때는 이곳에 아무것도 없어 정말 살기 힘들었는데 그나마 도서관이 생기면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립세종도서관이 문을 열자 문화시설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개관 이후 100일 동안 도서관을 찾은 사람이 16만5000명을 넘겼다. 주말에는 하루 3700명이 넘게 몰려들어 자리가 없을 정도다. 도서관이 보유 중인 8만여권의 책 중에서 13%가 넘게 대출 중이다. 오후 6시까지만 운영되는 도서관에 “퇴근 이후에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쳐 3월3일부터 평일 저녁 9시까지 연장 운영을 시작했다. 29일부터는 토요일에도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인 ‘2014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한다. 공무원 22명과 비정규 인력이 번갈아가며 야간,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 도서관 하나가 다목적 문화공간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숙’이 기본인 도서관의 속성상, 너무 시끄럽지는 않으면서도 주민들의 문화 갈증을 해소할 만한 행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도서관의 고민이다. 25일 저녁에 열린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인문학 특강이 그런 고민의 결과다. 체험형 동화구연, 부모강좌 등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조영주 도서관장은 “세종시 안의 문화시설이 부족해 문화향유에 갈증을 느끼던 지역주민들에게 만족을 주는 문화공간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종0/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한겨레신문 2014.3.31